2013년 10월 1일 화요일

정념(情念, Passion) 데카르트(Rene Descartes)

인간의 감정과 이성의 화합을 통해 도덕적 주체의 본성을 규정한
데카르트 최후의 저작!
 


인간의 감정에 대한 철학적이자 과학적인 탐구

일찍이 데카르트의 주요 텍스트인[방법서설]과 [성찰]의 번역서를 펴내 국내 데카르트 연구자들에게 그동안 큰 도움을 주었던 문예출판사에서 이번에는 데카르트 말년의 저작인[정념론](원제- 영혼의 정념들)까지 출간하면서 데카르트의 전 사상을 아우를 수 있는 도서 목록을 갖추게 되었다. [방법서설]과 [성찰]은 각기 서울대와 연세대의 권장도서로 추천되고 대학 논술 문제의 텍스트로 사용될 만큼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사유의 힘을 늘리는 데 도움을 주는 저서라고 할 수 있다. [방법서설]은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 이성을 바르게 사용하는 방법을 탐구하며, [성찰]은 이러한 방법론을 바탕으로 의심할 수 없는 인식의 확실성에 도달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성찰]에 담긴 데카르트의 그 유명한 명제 "나는 사유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이러한 방법적 회의의 극단에서 도출된 가장 명석 판명한 진리다.

이처럼 이성, 사유, 인식과 같은 정신적 원리를 탐구했던 앞의 두 저서와는 달리 [정념론]은 데카르트가 관심을 두지 않았을 법한 인간의 감정을 다루고 있다. 게다가 데카르트가 일평생 학문의 과정에서 고수했던 이원론적 입장, 즉 몸과 영혼을 독립된 실체로서 보는 관점이 이 저서에서는 몸과 영혼의 화합이라는 관점으로 전환된다. 이렇게 데카르트의 학문적 전제가 바뀐 것은 데카르트를 사숙했던 보헤미아의 왕녀 엘리자베스가 던진 단 하나의 질문 때문이었다. "생각하는 실체인 인간의 영혼이 어떻게 몸의 정기들을 결정할 수 있는 것입니까? 가르쳐주시기 바랍니다"하는 질문에 데카르트는 몸과 영혼의 화합에 의해 발생하는 것, 다시 말해 몸을 원인으로 하지만 영혼 안에서 야기되는 정념(情念, Passion)에 대한 고찰로 그의 말년을 채우게 된 것이다. 이러한 고찰이 그가 죽기 전 최후로 남긴 저작인 [정념론]에 담겨 있다.

데카르트 도덕률의 완성
영혼과 신체를 극단적으로 분리하는 근대적인 사유는 현대에 접어들어 인간 본성을 설명하기에는 한계를 드러낸다. 또한 역사 속에서 나타난 인간의 야만성과 부도덕함을 보았을 때 데카르트가 주장한 것처럼 인간 이성의 절대성을 인정할 수도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데카르트철학에서 발견할 수 있는 현대성은 무엇일까? 바로 그 해답을 [정념론]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저서는 영혼에 덮쳐오는 인간의 감정을 경험적이고 과학적인 관찰을 통해 밝혀내며, 그 주요 감정을 경이, 사랑, 미움, 욕망, 기쁨, 슬픔으로 요약한 뒤, 질투, 존경, 수치, 경멸과 같이 이로 인해 파생되는 특수한 감정들을 규정한다. 그리고 이러한 정념들에 수동적으로 지배받지 않고 감정을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은 몸이 아닌 영혼에만 연관되는 자유의지를 완벽하게 사용할 수 있는 사람, 그로써 우리가 덕이라 부르는 것을 따르는 사람이다. 데카르트는 이런 사람이 가지고 있는 정념을 관대함이라 지칭하며 이 같은 사람을 스스로 존경해도 마땅한 사람이라 판단한다. 요컨대 그는 인간의 감정과 이성의 화합을 통해 도덕적 주체의 본성을 규정함으로써, 이성에 대한 절대적인 우위를 전제로 삼았던 자신의 철학이 지닌 한계를 극복한 것이다.

실제로 데카르트는 그의 철학 한 평생에 있어 도덕, 아름다움, 종교와 같이 인간의 감정적 영역과 결부된 학문을 다루지 않았다. 그러나 데카르트 스스로는 굉장히 도덕적이고 건전한 감정을 지니고 삶을 이끌어갔던 사람이다. 그는 1645년 5월경 엘리자베스 왕녀에게 보낸 편지에서 "내게 닥쳐오는 일들을 비스듬히 봄으로써 그것들이 나에게 가장 흡족한 것이라고 여기며, 또 내 으뜸가는 만족은 나 자신에게 달렸다는 생각을 늘 가진 것이 타고난 듯싶었던 이 병약함의 상태를 물러가게 한 원인이라고 나는 믿습니다"라고 회고한다. 선천적으로 몸이 약했던 데카르트는 이처럼 일생을 살아가며 닥쳐올 수 있는 불안전한 감정과 불행한 일들을 신중히 물리치고 자신이 처한 현실 속에서 가장 적합한 결단을 내리도록 스스로에게 도덕적인 강령을 내린 사려 깊은 사람이었다. [정념론]은 이런 데카르트 스스로가 지녔던 도덕률이 어떻게 도출되었으며, 그것을 삶에서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1부. 정념 일반과 부수적으로 인간 본성 전체에 대해
2부. 정념의 수와 순서에 대해. 그리고 기본적 정념 여섯 가지에 대한 설명
3부. 특수한 정념들에 대해
경이에는 경이로워하는 대상의 큼이나 작음에 따라서 존경이나 무시가 결합한다. 그에 따라 우리는 우리 자신을 존경하거나 무시할 수 있다. 그로부터 정념이 오고, 뒤이어 고결함이나 오만, 겸손이나 비굴함의 습관이 뒤따른다.

좋은 것 또는 나쁜 것을 할 수 있는 자유 원인처럼 여기는 어떤 대상을 존경하거나 무시할 때, 존경에서는 숭배가 오고 단순한 무시에서는 경멸이 온다.

우리가 욕망하는 것을 얻어낼 징후가 많은지 적은지를 고려한다면, 그 징후가 많은 것으로 나타나는 것은 우리 안에서 희망을 일으키고, 조금만 나타나는 것은 질투의 일종인 두려움을 일으킨다. 희망이 극에 달하면 그 본성이 바뀌는데, 이는 안심 또는 확신이라고 불린다. 반대로 두려움의 극한은 절망이 된다.
(/ p.71)

다른 사람이 그들에게 받아 마땅하지 않은 좋은 것 또는 나쁜 것을 받았다고 평가한다면, 좋은 것은 부러움을 일으키고 나쁜 것은 동정심을 일으키는데, 그 두 정념은 슬픔의 종류들이다.
(/ p.73)

모든 정념의 유용성은 영혼 안에서 영혼이 보존하면 좋고 그 정념 없이는 쉽게 지워지는 상태가 될 수 있는 생각을 강화하고 지속하게 하는 데 있다. 마찬가지로 정념이 불러일으킬 수 있는 모든 나쁜 것은 더 이상 필요 없는 생각이나 주의를 집중하는 것이 좋지 않은 다른 것을 강화하고 보존하는 데 있다.
(/ p.80)

사랑의 대상을 자신보다 낮게 평가할 때 그 대상에 대해서는 단지 단순한 애정만을 갖고, 그것을 자신과 동등하게 평가할 때 그것은 우정이라 불리며, 그것을 더 높게 평가할 때 갖는 정념은 헌신이라 불릴 수 있다.
(/ p.87)

주목할 만한 것은 매력과 혐오라는 이 정념들이 사랑이나 미움이라는 다른 종류보다 더 난폭한 버릇을 지닌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감각에 의해 영혼에 오는 것이 이성에 의해 영혼에 표상되는 것보다 더 강하게 영혼과 접촉하고, 또한 매력과 혐오는 일반적으로 진실을 덜 지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정념 가운데 매력과 혐오가 가장 기만적인 것이며 가장 조심스럽게 경계해야만 하는 것들이다.
(/ p.89)

웃음은 폐동맥을 통해 심장의 오른쪽 공동에서 오는 피가 폐를 갑자기, 그리고 반복적으로 부풀게 하면서 발음이 불명료하고 귀청을 찢는 소리를 형성하는 목구멍으로 폐에 내포된 공기가 격렬하게 나가도록 강요하는 데서 성립한다. 그리고 폐는 공기가 나가는 만큼 부풀면서 횡경막, 가슴, 목구멍의 모든 근육을 밀어내는데, 그로 인해 그 근육들과 접촉하는 얼굴의 근육을 움직이게 만든다. 그리고 웃음이라 불리는 것은 단지 발음이 불명료하고 귀청을 찢는 목소리를 지닌 얼굴의 이러한 작용에 지나지 않는다.
(/ p.116)

나는 우리 안에서 우리 자신을 존경할 수 있는 정당한 이유로 오직 단 하나만을 주목할 뿐이다. 즉 우리가 자유의지를 사용한다는 것과 우리가 우리 의지를 지배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유의지에 의존하는 행위에 대해서만 우리는 칭찬받거나 비난받을 수 있고, 자유의지는 우리 안에서 우리를 우리 자신의 주인으로 만들면서, 신이 우리에게 부여한 권리를 비겁함으로 인해 절대 잃지만 않는다면, 이를테면 신과 비슷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 p.145)

정념에 의해 크게 감동받을 수 있는 사람은 이 삶에서 가장 큰 감미로움을 맛볼 수 있다. 그러나 정념을 잘 사용할 줄 모르고 불리한 운이 찾아올 때 가장 쓴맛을 볼 수 있는 것도 또한 사실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지혜는 아주 유용하다. 지혜는 우리가 정념의 주인이 되도록 하고, 정념을 여러 기술로 유용하게 사용하도록 가르침으로써 정념이 일으키는 나쁜 것에 아주 잘 견딜 수 있게 하고 모든 정념에서 기쁨마저 이끌어낸다.
(/ p.190)
르네 데카르트(Rene Descartes) 프랑스 투렌 지방의 라 에이에서 출생. 랑스 중부의 관료귀족 집안 출신으로 10세 때 예수회의 라 플레슈 학원에 입학, 철학을 수학하였으며, 1616년 푸아티에 대학에서 법학과 의학을 공부했다. 학교에서 배운 스콜라적 학문에 불만, 세상을 통해 배울 것을 결심하고 여행에 나선다. 1618년에는 지원장교로서 네덜란드 군에 입대했으며, 이때 수학자 베크만과 알게 되어 "보편수학"의 구상에 이른다. 1620년 군대를 떠나 독일, 네덜란드, 이탈리아 등을 여행하다가 25년부터 파리에 체재, 광학을 연구한 끝에 "빛의 굴절법칙"을 발견하였다. 1629년 이후에는 네덜란드에 체재하면서 형이상학 연구와 자연학을 포괄하는 [세계]의 구상으로 발전시킨다. 이 책의 완성단계에서 갈릴레이의 유죄 판결로 인해 출간을 보류하고(1644년 출간) 대신, 1637년 [방법서설] 및 이를 토대로 하는 [굴절광학], [기상학], [기하학]을 출간하였다. 또한 1641년 [성찰]에 이어, 1644년에는 자신의 철학을 집대성한 [철학의 원리]를 출간하였다. 이를 전후하여 데카르트 사상의 혁신성이 세상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으나, 칼뱅파 신학자들의 박해로 학문적 자유가 위협받던 네덜란드를 떠나 스웨덴의 크리스티나 여왕의 초청으로 1649년 가을 스톡홀름으로 가서 지내던 중 폐렴에 걸려 생애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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