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 16일 월요일

“아이에게 관심은 주지만 간섭은 하지 않아요”

한겨레

  [함께하는 교육] 교육 현장의 스칸디나비아 바람

북유럽 교육문화. 무상교육으로 유명한 그 세계는 우리나라 교육계에 늘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간 북유럽 교육문화를 소개하는 건 늘 학자들의 몫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교사, 학부모 차원에서 이 세계의 교육문화를 직접 체험해보는 사례도 늘고 있다.

“나비 그림을 보세요. 언뜻 같은 나비처럼 보이는데 다 다릅니다. 위에서 본 모습, 아래서 본 모습 등 다양한 각도에서 그린 겁니다.”

서울 유현초 한희정 교사가 <핀란드 초등 수학교과서1-1>(솔빛길)을 펼쳐놓고 설명했다. ‘0부터 5까지의 수’를 배우는 1학년 1학기 1단원. 한 교사가 말한 나비는 ‘그림 안에 같은 모양의 나비가 몇 마리나 있나요?’라는 연습 문제에 나온 그림이다. 한 교사의 말처럼 교과서 그려진 14개의 나비는 조금씩 다 다르다. 잘 살펴봐야 같은 나비가 몇 마리인지 셀 수 있다. 한 교사는 “주의력, 관찰력, 집중력을 다 동원해야 풀 수 있는 문제들이 많다”고 했다.



가정학습, 핀란드 교과서로 해보기도


서울 유현초 1, 2학년 학생들은 다른 학교에서 집에서 과제로 풀어오는 익힘책을 학교에서 풀고, 집에서는 이 핀란드 교과서로 공부한다. 하루에 한 장 이상 풀고, 학교로 가져오는 식이다. 재작년, 한 교사가 우연히 딸에게 권했다가 아이의 반응을 보고, 학교 쪽에 소개했다. 당시 일곱 살이었던 딸은 “재미있다”며 혼자서 하루에 열 장씩 풀었다.

한 교사는 “가정에서 해오도록 만든 우리나라 익힘책은 학부모 등 어른의 도움이 있어야 풀 수 있지만 핀란드 수학 교과서는 아이 혼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체계”라고 했다. 실제로 학부모들에게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이 교과서로 가정학습을 하게 된 것에 대해 90% 이상이 만족스러워했다.

올해 큰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낸 학부모 선아무개씨는 “선진국형 스토리텔링이 수학에 도입됐다고 하는데 우리나라 수학 교과서는 국어를 모르면 못 푸는 식이라 부담스럽다”고 고민을 털어놨다. 한 교사의 생각도 비슷했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초등 1학년 4월 말에 ‘3+1’을 ‘삼 더하기 일입니다’라고 쓰는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국어교과서에서는 5월 초에 낱말을 배웁니다. 문장 쓰기는 안 나와요. 수학을 배우기 위해 국어를 알아야 하는 구조입니다. 그만큼 교육과정 연계가 안 되어 있다는 겁니다.”

이와 비교하면 핀란드 수학 교과서는 ‘천천히, 집중해서 배울 수 있게’ 구성돼 있었다. 글자도 거의 없을뿐더러 삽화 하나하나가 일상과 맞닿아 있다. 친구가 자전거를 타고 집에 들어오다가 가방을 떨어뜨렸을 때, 친구들과 피크닉을 즐길 때 등 아이들 일상의 상황을 묘사하면서 그 지역의 자연과 사회와 문화를 경험하게 하는 식이다. 한 교사는 “우리는 문화적 맥락과 뿌리 없이 그냥 문제만 푸는 식인데 핀란드 교과서는 그 나라 아이가 평소 집에서 사용하는 물건, 사는 집, 만나는 동물 등이 다 수학의 소재가 되도록 했다”고 했다.

“우리나라 아이들이 국제학력평가(PISA)에서 수학 성취도가 높지만 흥미는 떨어지는 걸로 나오잖아요. 이런 문제의 처방으로 핀란드식 공부법을 제안해야 한다는 건 아닙니다. 사회구조, 입시환경 등에서 우리가 처한 상황은 다르거든요. 핀란드식 수학 공부가 근본적 처방은 아니죠. 다만, 교과서 삽화 하나에도 디테일을 추구하고, 문화적 맥락 등을 고민하는 점에선 배울 게 있습니다. 사실 핀란드 아이들 정서에 맞는 삽화라서 유로화 등이 나오거든요. 우리나라 아이들 정서에 맞는 그림이면 더 좋겠다는 안타까움도 있어요.”

아이와 북유럽 여행 가는 부모들도 있어

얼마 전까지 북유럽 교육문화를 직접 접하는 건 교육학자의 몫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자녀와 함께 북유럽행 비행기표를 끊는 이도 늘고 있다. ‘교육여행’이라고 못박고 떠난 건 아니지만 여행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배우는 점도 많다.

손정현씨는 지난해 1월 딸, 남편과 함께 가족여행으로 북유럽을 다녀왔다. 곧 기숙학교에 들어갈 딸과 함께 해외 가족여행을 구상하다가 교육공무원들이 떠나는 북유럽 여행팀에 우연히 합류하게 됐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스웨덴 옴니아 직업학교(Omnia Vocational School) 모습이었다. 손씨는 “우리나라에서 직업학교라고 하면 보이지 않게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곳에선 아이들 능력, 취향에 맞게 그야말로 선택할 수 있는 학교 중 하나였다”고 설명했다.

“목공, 설비, 각종 농사와 관련된 수업 등 분야가 무척 세분화되어 있었어요. 학교는 각각의 분야로 진출할 학생들이 자기 분야에서 자리를 잡아갈 수 있도록 제대로 된 지원을 하고 있었죠. 멘토링도 형식적으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산학협동이 잘되어 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직업세계와 긴밀하게 연결을 잘 도와줬습니다. 가장 좋았던 건 아이들에게 자신이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갖게 해준다는 점이었습니다.”

학부모들이 여행자의 시선으로 봤을 때 시선을 끄는 것 가운데 하나가 북유럽의 가족문화다. <북유럽에서 보낸 여름방학>(버튼티)을 쓴 조인숙씨는 지난해 열두 살 딸과 열네 살 조카를 데리고 방학 3주 동안 북유럽 여행을 했다. 놀랐던 대목은 덴마크 코펜하겐 길거리에서 만난 자상한 아빠들의 모습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아빠가 부재일 경우, 엄마가 아빠 역할을 하지만 엄마가 부재일 때 아빠는 엄마 역할을 못 한다고 하죠. 근데 그곳에서는 아빠와 아이가 다니는 일이 참 흔했어요. 남자인 조카아이가 ‘여긴 아빠들이 너무 좋다. 친절하고, 자상하고, 애들하고도 잘 놀아주고, 정말 행복할 것 같다’고 말하더군요.”

비경쟁 교육 시스템으로 유명한
북유럽 문화 체험 사례가 늘고 있다
핀란드 교과서로 공부하거나
현지 여행을 가기도 한다

“내 자녀가 ‘최선’을 다했다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중요한 건 교육기법이 아니라
사회적 분위기와 문화다


북유럽 학생들, “스칸디맘? 처음 들어봐요”

북유럽권에서 나고 나란 학생들은 한국에서 ‘스칸디맘’이라는 신조어가 나오고 스칸디 교육법이 주목을 받는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그들 사이에서는 교육문화, 교육법이라고 할 만큼 일부러 개발한 교육과정이나 교육방침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10일 스카이프 메신저를 통해 만난 스웨덴 쿵스홀멘 고등학교 3학년 사무엘 요안 안데르센군은 “부모마다 차이가 커서 뭐라고 하기가 힘들지만, 굳이 공통된 점이라면 부모들이 ‘네가 어떤 사람이든 자신감을 가져라’라는 말을 자주 하고, 이런 생각을 보편적으로 갖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네가 자랑스럽다’라는 표현도 많이 하고, 스스로 이런 생각을 하도록 해주죠. 예를 들어, 내 자녀가 ‘최선’을 다했는데도 연봉이 높은 직장을 얻지 못했다면 그건 그거대로 괜찮다는 식입니다. 최선을 다한 선에서 자신의 자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문화가 있어요.”

쿵스홀멘 고등학교 3학년 이하영(<열다섯 살 하영이의 스웨덴 학교 이야기> 저자)양은 “미래나 진로 등에 대해서 관심은 갖지만 선택의 몫은 아이에게 남겨둔다”며 “관심은 갖지만 간섭은 안 한다고 표현하면 맞을 것 같다”고 했다. 합리적이고, 자율적이면서 ‘쿨’하기로 소문난 스칸디맘의 이미지가 어느 정도 맞는 셈이다.

‘무한경쟁’을 외치는 우리나라 교육문화가 참고해두면 좋을 점도 있다. 사무엘군은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몇 년은 교사들이 아예 아이들이 경쟁하는 걸 막는다”며 “선생님들이 늘 하는 말은 ‘남들과 비교하지 마라. 자기 자신과 비교해라’라는 것이다. 그 어떤 교사라도 학생이 최선을 다한 이상 실망하거나 하지 않는다”고 했다.

물론 북유럽 교육문화라고 모든 학생들이 100% 만족하는 건 아니다. 이하영양은 “좋은 점도 있지만 스웨덴 교육 시스템이 너무 느슨하다고 생각한다. 요즘에는 교사 봉급이 너무 적어서 능력 있는 사람들이 지원을 하지 않게 되고, 교육 자체의 질도 떨어지는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고 했다. 사무엘군은 “2011년 교육 개혁이 너무 성급하게 진행되어서 우리 세대를 두고 ‘실험용 쥐’라고 부른다”고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다.

북유럽 학생들 눈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보여주는 선진국 교육문화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마냥 좋아 보이진 않는다. 사무엘군은 “경쟁이 심한 사회에서 아이에게 ‘남들과의 경쟁은 중요하지 않아’라고 말한다고 현실이 바뀌는 건 아니다”라며 “한국 교육 시스템이 지금 같은 모습인 건 어느 정도는 필요에 의해서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어린아이들에게 너무 강압적으로 많은 것을 요구하는 탓에 너무 일찍 배움에 흥미를 잃지는 않는가 싶기는 하다”고 했다.

“제 장래희망은 언어학자인데요. 재작년까지는 제가 뭘 하고 싶은지 몰랐어요. 만약 저희 부모님이 제가 어릴 때부터 언어를 배우기를 강요했다면, 아마 진작 흥미를 잃었을 겁니다.”

이하영양은 “스칸디맘, 스칸디대디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사회적으로 여유가 있기 때문”이라며 “한국은 사회적 기반이 부족하니까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크다. 그래서 교육에서도 경쟁을 강조하는 것 같다. 함께 뒤처질 각오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천천히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스칸디나비아사회문화연구소 이재식씨는 “스칸디맘 등이 유행하면서 그 나라 교육법 등을 마치 기술 개발을 소개하듯이 짜깁기해서 피상적으로 소개한 책들이 나온다. 한데 스티브 잡스가 애플을 개발한 것처럼 특별한 기술이 있는 게 아니다. 북유럽 사람들의 교육은 그야말로 그냥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문화다”라고 말했다.

“스웨덴에 우리나라 학생들을 데리고 간 적이 있었는데요. 호텔 로비에서 제가 데리고 간 한국 아이가 유리를 깼습니다. 호텔 쪽에서는 일단, 아이가 다쳤는지 확인하더군요. 제가 변상 문제를 얘기하니 아이들이 한 거라 괜찮다고 하더군요. ‘아이들은 그럴 수 있다, 우리 사회 전체가 감당할 몫이다’라는 분위기였죠. 스칸디 교육법을 두고, 자율, 합리 등을 이야기하는데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자연스러워야 한다, 편안해야 한다’는 사회적인 분위기와 합의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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