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 22일 일요일

‘나치 협력 반성’ 선명한 벤츠 박물관

‘나치 부역’ 벤츠에 불매운동 없는 이유는?

한겨레

  독일 메르세데스-벤츠 박물관 가보니

자동차 혁신과정 전시물 한켠에

“동유럽 노동자 강제노동 사죄”

나치하 과거 잘못 낱낱이 공개

배상 통해 불매운동 안일어나

중국과 영토문제 후유증 몸살

일본기업 ‘잃어버린 2년’과 대조


‘나치 협력 반성’ 선명한 벤츠 박물관

“2차 대전이 끝난 뒤, 다임러-벤츠는 나치 독일에 참여했음을 시인하고 강제노동에 동원된 사람들에게 사죄했다.”

빛바랜 문서 옆엔 일련 번호와 함께 강제노동에 끌려온 수많은 동유럽 노동자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유리 안쪽엔 2차 세계대전 당시 벤츠 공장에서 발생한 사고일지가 걸려있다. 일지 속 노동자들은 나치 친위대(SS)의 감시 속에 죄수처럼 수용소에서 살며 공장에서 일하다 사고를 당했다고 글은 전한다. 벤츠는 사고 일지 옆에 “나치 지배 하에서 동유럽 노동자들은 가장 밑바닥 처우를 받으며 부족한 의료지원을 받았다”고 고백하고 있다.

지난 14일 독일 남부 슈투트가르트에 있는 메르세데스-벤츠 박물관을 찾았다. 8층부터 1층까지 내려오며 160여대의 자동차와 1500여점의 기록물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디젤 엔진과 에이비에스(ABS)브레이크 등 자동차 기술의 혁신 과정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더 인상깊은 것은 기업의 이미지를 ‘영광’이 아닌 ‘반성’으로도 만들 수 있음을 확인한 것이었다.

벤츠는 박물관에서 과거의 역사를 솔직히 꺼내놓는다. 1930~1940년대 전시물을 보면, 현재 세계시장을 호령하는 독일 자동차의 역사가 나치가 번영의 상징으로 삼기 위해 속도 무제한 고속도로 ‘아우토반’을 건설했고, 자동차 보급을 독려한 것이 산업의 초석이 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 전쟁말기인 1944년 중반엔 모든 벤츠 공장이 강제 노동자로 채워져 무기도 만들었다.

과거의 비윤리적인 기업 행동은 현재의 제품 판매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러나 벤츠는 강제노동에 대해 사죄하고 희생자에게 배상했음을 밝힌다. 역사에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줘 부정적인 인식을 뒤집는 것이다. 이미 1988년 벤츠는 나치독일에 협력한 행위를 공식시인하고 강제노동 희생자 및 가족에게 2000만 마르크를 지급했다. 1999년엔 벤츠를 비롯해 폴크스바겐, 알리안츠 등 독일 대기업들은 독일 정부의 중재 아래 당시 100억마르크에 달하는 강제노동 배상기금을 조성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그결과 독일 대기업은 역사 등의 이유로 불매운동을 당하지 않는다.

반면 일본 자동차업체는 정반대의 상황에 빠져 있다. 2012년 8월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열도)를 둘러싼 중국과 일본 사이의 영토분쟁은 중국 소비자의 반일 감정을 불러왔다. 일본 정치인들이 2차 세계대전의 전쟁범죄에 대한 반성 대신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꾸준히 찾는 등 불붙은 반일 시위의 ‘땔감’은 충분했다.

그 결과 세계 최대의 자동차시장인 중국에서 도요타와 닛산 등 일본 자동차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2011년까지 매해 판매량이 크게 증가하던 닛산은 지난해 판매량이 4.5% 감소했다. 승승장구하던 도요타도 75만대 수준으로 판매가 7.3% 줄었다. 카를로스 곤 르노-닛산 회장은 2013년 프랑크푸르트모터쇼에서 “닛산과 다른 모든 일본자동차 업체들이 일본과 중국의 섬 영토문제의 후유증을 겪고 있다. 중국 시장이 빠르게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닛산의 시장점유율은 같은 속도로 회복하지 않고 있다. 지난 2년은 우리에게 잃어버린 시기였다”고 토로했다.

14일 일본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조선인 징용자가 끌려가 일한 나가사키 조선소 등의 시설을 한국 정부의 반대에도 세계문화유산으로 추천하기로 결정했다. 일본 정부 뿐만 아니라 미쓰비시중공업과 신일철주금 등 일본 기업도 현재 국내 징용 피해자의 손해 배상요구를 무시하고 있는 상태다. 독일 자동차 업체가 아시아 시장에서 약진하고 있는 또다른 이유는 역사에 있다.
한겨레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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