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 20일 금요일

반물질과 반중력

지금으로부터 꼭 80년 전인 1933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는 오스트리아의 에르빈 슈뢰딩거와 영국의 폴 디랙이었다. ‘원자이론의 새로운 생산적인 형태’를 발견한 공로였는데 슈뢰딩거는 1925년 그 유명한 슈뢰딩거 방정식을 만들었고 디랙은 1928년 슈뢰딩거 방정식에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을 결합한, 역시 유명한 디랙 방정식을 만들었다. 둘 다 양자역학의 초석이 되는 업적이다.

그럼에도 당시 슈뢰딩거는 공동수상에 대해 불만이었다고 한다. 비슷한 시기 행렬 방정식(뒤에 슈뢰딩거 방정식과 같은 내용임이 밝혀졌다)을 만든 독일의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는 1932년 단독으로 수상했기 때문이다. 슈뢰딩거의 기분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지만 디랙이 이렇게 서둘러 수상하게 된 데는 디랙 방정식이 내포하고 있는 놀라운 개념인 반물질이 1932년 우주선(cosmic ray)에 존재하는 것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디랙 방정식을 풀면 기존의 양의 에너지와 음의 에너지도 나오는데 이것의 물리적 의미를 고민하던 디랙은 1931년 사고의 도약으로 에너지는 양으로 하고 대신 입자의 전하를 반대로 하는 해결책, 즉 반물질의 개념을 발표한다. 그러나 주위의 냉소에 지친 디랙이 반물질은 물리적 실체가 아니라 수학적 결론이라고 한발 물러서고 있던 때에 반물질인 양전자가 발견됐으니 물리학계가 디랙을 경이로운 존재로 바라볼 만도 했다. 참고로 우주선에서 반물질을 발견한 미국의 칼 앤더슨은 1936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반물질은 물질과 물리적 특성이 같고 단지 전하만 반대인 입자다. 즉, 음전하인 전자의 반물질인 양전자는 질량, 전하의 크기 등 물리량이 같지만 전하의 부호만 반대인 양전하이다. 양전하인 양성자의 반물질인 반양성자 역시 음전하라는 것만 빼면 똑같다. 그렇다면 양성자 하나와 전자 하나로 이루어진 수소원자의 반물질은 반양성자 하나와 양전자 하나로 이뤄진 반수소원자일까? 물론 그렇다. 실제로 1995년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물리학자들이 반수소원자 9개를 만드는 데 성공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지금은 일상적으로 반수소를 만들고 있다.


▲ CERN의 ALPHA실험에 쓰이는 반수소를 포획하는 장치의 모식도. 자석(octupole)에 둘러싸인 페닝 트랩 안에 반수소가 들어있는데, 초저온에서 자기장을 끄면 반수소가 중력(또는 반중력)을 받아 아래(또는 위)로 휘어지면서 전극(electrodes)의 내벽에 부딪쳐 소멸될 때 검출기(annihilation detector)에서 신호가 포착된다.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반수소로 중력이냐 반중력이냐 확인 실험
그런데 온라인 과학저널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4월 30일자에 흥미로운 논문이 실렸다. CERN의 반수소 연구그룹인 ALPHA(알파)실험에서 반수소원자로 반물질이 중력을 띠는지 반중력을 띠는지 검증하는 방법을 확립했고 이를 바탕으로 기존 데이터를 분석해봤다는 내용이다.

영국의 아이작 뉴턴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할 때는 물론 아인슈타인이 일반상대성 이론을 발표했을 때도 반물질 개념이 없었으므로 중력은 질량을 갖는 물질(반물질의 상대 개념이 아닌) 사이의 인력으로 정의됐다.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물질은 자연계에서 한 쌍의 반쪽일 뿐이니 나머지 반은 다른 존재(질량)의 힘을 어떻게 느낄까. 물론 반물질끼리는 물질끼리처럼 인력을 느끼겠지만 물질과 반물질 사이에서 서로의 질량이 미치는 힘은 인력(중력)일까 척력(반중력)일까. 미국 뉴욕시립대학교의 이론물리학자 미치오 카쿠 교수는 2008년 출간한 저서 ‘불가능은 없다’에서 이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반입자는 일상적인 입자와 반대부호의 전하를 갖고 있다. 그러나 전하가 없는 입자(빛의 입자인 광자와 중력을 전달하는 입자인 중력자가 여기에 속한다)는 자기 자신의 반입자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중력자는 자신의 반입자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서 중력과 반중력은 동일하다는 뜻이다(반중력은 없다는 의미). 따라서 반물질은 지표면에서 위로 떠오르지 않고 일상적인 물질처럼 아래로 떨어진다.”

이런 언급 뒤에 카쿠 교수는 괄호 안에 이렇게 덧붙이며 살짝 한 발 물러섰다. “물리학자들은 이렇게 믿고 있지만 실험실에서 확인된 사례는 아직 없다.” 이번 논문에서도 저자들은 앞에서 그런 분위기를 이야기하지만 어쨌든 아직은 모르기 때문에 실험으로 확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현재 CERN에서 두 그룹이 미국의 페르미연구소에서 한 그룹이 이 실험을 진행하거나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반물질이 물질과 중력의 관계인지 반중력의 관계인지를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나무에 매달려 있는 반물질 사과가 반중력을 받는다면 꼭지가 떨어질 때 사과가 땅으로 떨어지는 게 아니라 하늘로 올라갈 것이다. 뉴턴이 이 광경을 본다면 어떤 심정일까. 물론 현실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 물질로 이뤄진 세계에서 이런 크기의 반물질은 존재할 수 없는데 물질과 반물질이 만나면 고에너지의 빛(감마선)을 내놓으며 소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CERN에서 만든 반수소는 페닝 트랩이란 교묘한 장치로 포획해 물질인 벽과 닿지 않게 해야만 살려둘 수 있다.

▲ 반물질은 반중력을 느낄까? 반물질 개념을 생각해낸 폴 디랙은 뉴턴의 뒤를 이어 케임브리지대학의 루카스 석좌교수를 역임했다(현재 스티븐 호킹이 그 자리에 있다). 두 사람은 20대에 큰 업적을 냈다는 점 말고도 극단적으로 비사교적인 성격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웨스트민스터사원에 있는 디랙의 묘에서 멀지 않은 곳에 뉴턴의 묘가 있다. ⓒ강석기

이번 논문에서 연구자들은 트랩에 잡혀 있는 반수소의 움직임을 분석해 반수소가 물질인 지구에게 끌리는지(중력) 멀어지는지(반중력) 확인할 수 있는 실험방법을 제안했다. 원자 하나에 미치는 중력(또는 반중력)의 영향력을 측정하는 건 굉장히 어려운 문제로 다른 교란 요소들을 최대한 없애야 한다. 참고로 만들기 쉬운 양전자나 반양성자는 전하를 띠고 있어 중력보다 훨씬 큰 힘인 전자기력을 받기 때문에 실험에 부적합하다.

컴퓨터 시뮬레이션 결과 이런 조건을 만족시키려면 트랩 내부의 온도를 30mK(밀리켈빈), 즉 절대0도(영하 273.15℃)보다 불과 1,000분의 30도 높은 온도인 초저온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상태에서 트랩에 걸려있는 자기장을 끄면 천천히 이동하고 있던 반수소가 중력(또는 반중력)의 영향을 받아 궤도가 휘어진다. 즉 중력을 받는다면 아래로 휘어져 아래쪽 벽에 부딪쳐 소멸할 것이고, 반중력을 받는다면 위쪽 벽에 부딪쳐 소멸할 것이다. 연구자들은 기존의 반수소 434개에 대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결론을 내리지 못했지만 현재 업그레이드하고 있는 장치에서는 이 실험이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하고 있다.

카쿠 교수의 언급처럼 물리학자 대다수가 반물질도 중력을 받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상황에서 만일 반중력이 존재하는 것으로 실험 결과가 나온다면 80여 년 전 우주선에서 반물질인 양전자의 존재를 확인한 것만큼이나 놀라운 사건이 되지 않을까.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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