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 20일 금요일

복잡한 세계와 진지하게 씨름하는 물리학

80년대 후반기와 90연대 초반기에 이공계열 학과에 입학한 대학 신입생들은 거의 모두 지난주에 소개한 ‘코스모스’를 읽고 감명받은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 필자도 ‘코스모스’가 자연의 원리를 역사, 사회, 문화적 요인과 버무려 통합적으로 설명하는 방식에 마음이 끌려 물리학을 전공하기로 결심한 수많은 사람 중 하나였다. 하지만 막상 물리학과에 입학해 보니 배우는 내용은 끝없는 수학 계산과 연습문제 풀이가 대부분이어서 자연과 사회를 통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애초 기대와는 많이 동떨어진 것이었다.

이런 필자에게 물리학의 참 모습을 보여주신 두 스승님이 계셨는데, 학부 1학년 물리학 원론을 가르쳐 주셨던 장회익 교수님과 학부 4학년 통계물리를 가르쳐 주셨던 최무영 교수님이다. 두 분은 학부 수준에서조차 물리학이 세계를 특정한 방식으로 이해하려는 포괄적이고 강력한 이론적 틀이라는 점을 부각시키시려고 노력하셨다. 그리고 그러한 이론적 틀이 물리 현상만이 아니라 사회 현상이나 문화 현상처럼 우리 세계의 다층적 측면을 이해하는 데 활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셨다. 두 분이 물리학을 바라보는 관점에 깊은 감명을 받은 필자는 운 좋게 장회익 교수님 지도로 양자역학의 해석과 관련한 학사학위 논문을, 최무영 교수님 지도로 양자적 혼돈과 관련된 석사학위 논문을 쓰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학부 시절 내내 물리학 이론이 세계를 어떻게 설명하는지와 같은 본질적 질문을 놓고 고민하던 필자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 책이 이번 주에 소개할 ‘카오스’란 책이다. 1987년 출간된 이 책은 물리학이 두 당구공의 충돌처럼 단순한 대상 사이의 단순한 상호작용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한 컵의 물처럼 수많은 물질 입자가 복잡한 방식으로 상호작용하는 현상도 잘 다룰 수 있음을 생생한 여러 사례를 통해 보여준 책이다.

고전 역학이나 소립자 물리학 책에 나오는 이론적 설명들은 엄밀하고 아름답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우리가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던지는 질문, 예를 들어 ‘구름은 어떻게 생겨나는 것일까?’와 같은 질문을 답하기에는 무력한 수학적 구조를 다룰 뿐이다. ‘카오스’의 저자인 제임스 글릭은 2차 대전 중 핵폭탄 개발의 중심지였다가 1970년대가 되면 우수한 인재들이 모여 첨단 과학 연구를 수행하던 로스 앨러모스 국립연구소의 이론 분과에서 일하는 젊은 물리학자 미첼 파이겐바움의 기행을 소개하며 프롤로그를 시작한다. 파이겐바움을 통해 글릭은 물리학의 범위가 이런 것들에 한정되지 않으며 실제 복잡계의 여러 측면을 물리학이 체계적인 방식으로 다룰 수 있다는 점을 부각시킨다.

글릭이 강조하고 싶은 점은 이 시기부터 시작된 ‘카오스 혁명’이 어떤 것이 연구할만한 가치가 있는 문제인가에 대한 물리학자들의 시각을 바꾸어 놓았다는 점이다. 그 전까지 물리학자들은 자신들은 아원자 세계의 이론적 구조의 단순함을 탐색할 뿐, 날씨 변화처럼 변덕스러운 현상은 기상학자들이나 다룰 ‘자명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서 ‘자명하다’함은 누구나 날씨 변화가 어떻게 발생하는 지를 쉽게 이해하고 예측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실은 누구도 그런 일을 할 수 없었고, 현재 우리는 카오스 이론의 발전을 통해 그런 일이 완벽하게 이루어지는 것은 불가능함을 알고 있다.

여기서 자명성은 물리학자들의 환원주의적 연구 태도와 관련된다. 즉, 물리학의 기본 법칙을 모두 발견하고 나면 나머지는 그 법칙들을 그저 ‘적용’하여 복잡한 현상을 유도하는 ‘따분한’ 일만 남는다는 것이다. 저명한 화학자 라이너스 폴링을 격분시켰던, 역시 저명한 물리학자 폴 디랙의 견해에 따르면, 물리학은 이미 1930년대 완성되었고 화학과 같은 다른 학문이 그 뒤처리를 하면 될 일이라는 식이다.

카오스에 대한 연구는 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무엇보다 카오스에 대한 연구는 복잡한 현상에 대한 실험적, 이론적 연구를 통해 그전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물리학의 새로운 영역이 존재함을 밝혀주었고 프랙탈, 끌개, 분기(bifurcation)처럼 물리학자들이 ‘자명하지 않은’ 방식으로 탐색할 수많은 새로운 연구 주제를 제기했다. 켈빈이나 디랙과 같은 수많은 거짓 선지자들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물리학은 결코 완성되지 않은 채로 새로운 지식을 끊임없이 산출한다는 점을 카오스 이론은 다시 한 번 보여준 것이다.

또한 카오스에 대한 연구는 복잡한 현상은 궁극적으로는 수많은 초기 조건에 의해 규정되기에 그저 지저분한 현상일 뿐이라는 기존의 선입견이 잘못임을 보였다. 매우 복잡하게 보이는 현상도 실은 그것을 관통하는 몇 가지 원리와 매겨 변수 값을 활용하여 이해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카오스’의 훌륭함은 얼핏 듣기에 역설적으로 보이는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일반인도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글릭이 뛰어난 과학 저널리스트라는 사실이 큰 도움이 되었다. 북경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과 뉴욕의 날씨 변화 사이의 상관 관계를 비유로 카오스의 본질을 설명한 대목은 이 책 출간 이후 ‘나비 효과’라는 개념으로 상식으로 자리 잡았다.

마지막으로 카오스에 대한 연구는 물리학이 좁은 의미의 자연 현상을 넘어 어떻게 세계의 다양한 측면에 활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카오스 연구와 복잡계 연구가 완전히 동일한 것은 아니지만, 러시아워 시기의 복잡한 도로 상황에 대한 분석이나 도시의 거주 구역이 인종에 따라 분리되는 현상처럼 사회 현상의 특정 측면도 카오스와 복잡계에서 등장한 원리를 활용하여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 카오스 연구를 통해 분명해졌다. 이 과정에서 물리학이 진정한 의미로 세계를 이해하는 통합적인 이론틀이 될 수 있음을 보다 설득력 있게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코스모스’가 제시했던 통합적 물리학의 전망이 ‘카오스’를 통해 다시 한 번 그 가능성이 확인되었던 것이다.

얼마 전 재출간된 ‘카오스’는 2007년 출간된 이 책의 20주년 기념판을 새롭게 번역한 것이다. 필자가 살펴본 바로는 글이 부드럽게 잘 읽히고 설명이 이해하기 쉬웠다. 복잡계 물리학 전공자가 최종 원고를 감수하였기에 번역의 정확성에도 신뢰가 간다. 물리학에서 ‘chaos’는 혼돈으로 번역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일상어에서 혼돈은 ‘사물의 구별이 확실하지 않은 상태’, 즉 혼란스럽다는 의미로 사용되기에 카오스 과학의 실제 내용과 어긋난다. 그래서 아마도 출판사는 카오스라는 원어를 그대로 사용하기로 결정한 것 같다. 이 점만 주의해서 읽는다면 ‘카오스’는 물리학의 매혹적인 이론의 풍경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해 줄 것이다.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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