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 22일 일요일

정직·배려·자기조절 부족 … 중학생들 '사람됨의 위기'

대한민국 중학생 리포트 … 16개 시·도 2171명 심층조사
10개 지표 만들어 인성 측정
정의·공감·소통은 높은 편
"어른들 편법 그대로 닮아가"
“친구요? 엄마가 다 필요 없대요. 공부만 잘하면 된다고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어차피 저희를 판단하는 건 성적이니까.”(서울 중랑구 A중 1학년 여학생)

“왕따 당하지 않으려면 왕따 시켜야 해요. 내가 살려면 마음 내키지 않아도 다른 애를 괴롭혀야 돼요.”(서울 동대문구 B중 2학년 남학생)

“대화의 절반은 욕이죠. 다들 그렇게 하니까 아무렇지 않아요. 부모님도 욕을 섞어 쓰니까 우리에게 뭐라고 못하죠.”(서울 강남구 C중 1학년 남학생)

아이들의 인성이 위태롭다. 공부와 성적에 짓눌려 주변 사람들을 돌아보지 않기 일쑤다. 스마트폰과 게임 등 자극적 반응에 길들여져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도 부족하다. 많은 아이가 언제든 친구들로부터 왕따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고 산다. 서울지역 중학생 82명을 만나 심층 인터뷰한 결과다.

경희대와 중앙일보는 지난 6월부터 석 달 동안 7명의 교수단(단장 정진영 부총장·정치외교학)과 본지 기자들로 특별취재팀을 꾸려 중학생의 인성 실태를 조사했다. 가정·학교에서부터 청소년쉼터까지 다양한 공간에서, 우등생부터 소위 ‘일진’까지 여러 층위의 학생들이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었다. 중학생들은 상대방을 배려하거나 협동하는 일에 익숙하지 않았다. 꿈이 없거나 향후 자신의 진로에 대해 고민해 본 적 없는 아이도 많았다. 조사 책임자인 정진영 교수는 “아이들만의 잘못이 아니다”며 “성공을 위해 거짓말과 편법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기성세대의 세태, 성적에만 매몰된 지나친 경쟁주의 교육이 아이들의 인성을 망치고 있다”고 말했다.

중학생들의 위태로운 현실은 수치로도 드러난다. 인성 실태에 대한 객관적 분석을 위해 취재팀은 전국 16개 시·도 중학생(2171명), 교사(232명), 학부모(353명)를 표본 조사했다. 정직·정의·법준수·책임(도덕성)과 공감·소통·배려·협동(사회성), 자기이해·자기조절(정서) 등 10개 지표별로 모두 30개 문항에 대한 설문 답변 결과를 점수화(만점 100점)해 인성지수를 만들었다.

조사 결과 정직(61.7점)이 제일 낮았다. 원하는 걸 위해서라면 거리낌 없이 거짓말을 하는 일부 어른의 모습을 그대로 닮았다는 지적이다. 배려(63.6점), 자기조절(64.3점), 법준수(68.8점), 협동(69.5점), 자기이해(69.9점) 등 5개 지표도 70점 미만으로 낮았다. 책임감(74.5점), 소통(75점), 공감(76.4점), 정의(81.3점) 등 4개 지표는 상대적으로 높았다. 10개 지표의 평균값은 69.8점이었다.

경희대 김중백(사회학) 교수는 “설문에서 인간으로 갖춰야 할 기본적 심성과 행위양식을 묻기 때문에 답변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치우치게 된다”며 “이를 감안하면 69.8점은 ‘미(美)’나 ‘양(良)’에 해당하는 낮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어른들이 생각하는 중학생의 문제는 더욱 심각한 수준이었다. 교사(50.7점)와 부모(60.5점)가 매긴 중학생 인성 점수는 학생들 자신의 평가보다 훨씬 낮았다. 서울 노원구 온곡중학교 최동선(여·50) 교사는 “아이들이 자기가 손해 보는 일이 아니면 관심을 잘 갖지 않는다”며 “동영상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같은 즉각적인 반응에 길들여져서인지 남에 대한 존중과 배려처럼 깊은 생각이 필요한 행동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중1 자녀를 둔 최경주(여·47)씨는 “부모들이 모든 걸 다 챙겨주니 요즘 아이들은 책임감이 떨어지고 공중도덕도 약한 것 같다”고 했다.

경희대 김병찬(교육학) 교수는 “이전에도 사춘기 청소년들은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으며 방황했지만 요즘 중학생들은 매스미디어의 발달로 사회의 악습들을 더욱 빨리 배우게 된다”며 “정직·배려·자기조절 등 학생들에게 특히 부족한 품성을 우선 키워주는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하고, 어른들이 특히 이런 덕목에서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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