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 20일 금요일

교육의 대모 전혜성 박사 존경받는 아이로 키우는 법

잔설이 내린 듯 희끗한 백발의 전혜성 박사. 그녀는 슬하의 여섯 남매 모두를 하버드대와 예일대에 보내 한국인 최초의 예일대 석좌교수, 오바마 행정부 차관보 등으로 길러내고 두 아들과 남편을 ‘지난 100년간 미국에 가장 공헌한 100인의 인사’에 올린 현명한 엄마이자 어진 아내다. 전혜성 박사에게 ‘내 아이를 존경받는 리더로 키우는 법’을 물었다.
‘엄친아’가 있다면 ‘아친엄(아들 친구 엄마)’도 있다. 전혜성 박사는 단연 아친엄이다. 간추린 이력만 보아도 단박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녀는 이화여대 영문과를 다니던 중 전액 장학금을 받고 교환학생으로 디킨슨대학에 진학해 경제학과 사회학을 전공한 후 보스턴대학 대학원을 졸업했다. 지금이야 유학이 발에 차이는 말이 되었지만, 1940년대 말에는 미국 유학이 흔치 않은 일이었다.

또 1960년대에는 비교문화정보 체계를 만들어 일본 국립민족학박물관과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에서 객원교수로 강단에 섰다. 화려한 이력만큼 수상 경력도 눈부시다. 국무총리상, 해외동포상에 이어 국민훈장 석류장까지 받았다. 슬하에는 3남3녀를 두었는데, 6남매 모두 하버드대와 예일대를 졸업하고 각자의 분야에서 명예를 얻었다. 이 덕분에 전혜성 박사는 뒤늦게 ‘자녀교육의 대가’로 추앙받았다. ‘잘나도 너무 잘난’ 전혜성 박사 자녀들의 면면은 이러하다.

하버드대를 졸업한 첫째 딸 고경신 씨는 MIT 이학박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예일대 의대를 졸업한 첫째 아들 고경주 씨는 2009년 오바마 행정부의 보건부 차관보를 역임했다. 둘째 아들 고동주 씨는 하버드대를 졸업한 의사이며, 셋째 아들 고홍주 씨는 한국인 최초로 예일대 법대 석좌교수와 로스쿨 학장을 역임한 후 2009년부터 오바마 행정부 법률 고문으로 재직 중이다. 하버드대 법학박사인 둘째 딸 고경은 씨는 유색인종 여성 최초로 예일대 로스쿨 석좌 임상교수가 되었으며, 막내아들 고정주 씨도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현재는 미술가로 활동 중이다. 이처럼 여섯 자녀 모두를 선망의 대상으로 기른, 실로 대단한 일을 해낸 전혜성 박사의 비결은 참으로 쉽고 단순하다.

“부모가 놀러 다니면서 자녀들에게 공부하라고 할 수 없죠. 아이들이 목적에 도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교육 효과에 대한 한 사회학 연구 결과를 보면 말로만 했을 때의 효과는 30%, 부모가 역할 모델이 되어 모범을 보였을 때는 그 세 배의 효과가 있다고 해요. 저는 아이들을 기르면서 남편과 일상적인 대화를 나눌 때도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 세심하게 신경 썼어요.”

자녀의 삶은 부모의 삶을 반영한다
현재 전혜성 박사는 남편과 함께 설립했던 한국연구소의 정신을 계승한 예일대 동암문화연구소에서 차세대 지도자 양성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리더 배출에 힘쓰고 있다.
“지금 세계화의 진행 속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빨라요. 한국 사람이 세계무대에서 지도자로 진출할 만큼 국가 이미지도 높아졌죠. 한국의 이미지는 자녀교육에 매우 중요합니다. 아이들의 자긍심에 큰 영향을 주거든요. 그러나 국가 이미지를 높이는 건 개인이 할 수 없는 일이에요. 비단 한국뿐 아니라 동양 전체의 이미지가 올라가야 하고요. 그래서 동암문화연구소를 꾸준히 운영해온 것입니다.”

여든셋의 전혜성 박사는 현재 미국의 한 실버타운에서 지낸다. 건강 프로그램이 잘돼 있고, 물 길러 우물가에 모인 이들처럼 함께 모여 서로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만족한다고 말한다.
“자녀교육과 노인 문제는 연관돼 있어요. 자녀교육에 돈을 다 써버리면 노후 준비를 할 수 없어요. 부모들도 자신의 남은 일생을 감안해서 자녀교육에 투자할 비용을 정해야 해요. 너무 늦은 시기에 마음먹으면 돈이 없어서 실버타운에 갈 수가 없죠. 교육비에서 10%를 떼어 노후보장 적금을 들라고 말하는 이유입니다. 저는 1989년에 이미 실버타운에 들어갈 것이라고 결정했고, 아이들이 대학에 진학하고부터는 경제적 지원을 하지 않았어요. 스물둘 된 손자가 1년 후에 결혼을 하겠다고 선언하면서 결혼 자금은 알아서 구하겠다고 하더군요. 이러하니 제가 실버타운에 갈 수 있었죠. 한국에서는 결혼 안 한 나이 든 자식까지도 보듬어 안고 살더라고요. 그러한 결정이 다음 세대, 그 다음 세대에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 감안해야 합니다.”

오바마 행정부 보건부 차관보를 역임한 첫째 아들 고경주 씨와 오바마 행정부 법률 고문으로 재직 중인 셋째 아들 고홍주 씨.
부모는 지도자가 아니라 동반자
가장 중요하면서 어려운 일이 자녀가 하고 싶은 일을 찾도록 하는 일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것보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좋아하라는 말도 있지만, 이는 좋아하는 일을 찾지 못한 이들을 위한 위로가 아닐까. 전혜성 박사의 새 책 《생의 목적을 아는 아이가 큰사람으로 자란다》의 주제도 자녀가 하고자 하는 일을 찾도록 돕는 방법이다.
“생의 목적을 알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사람은 일생토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자신이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를 찾는 것 같아요. 그걸 찾는 과정은 행복하고, 하고픈 일을 찾아내면 더욱 행복하죠. 하지만 그건 제 나이에도 참 힘든 일이에요.”

자신을 알아가는 일은 혼자만의 힘으로 되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의 영향은 직접적이지 않더라도 강력하다. 전혜성 박사 역시 그랬다. 어린 시절부터 말을 조리 있게 잘하던 그녀에게 어머니는 “이 다음에 자라서 변호사가 되면 좋겠다”고 말하곤 했다. 그 오래전 기억이 지금도 전혜성 박사의 가슴 깊이 남아 때로 힘이 된다. 변호사가 되지는 않았지만 강연을 하거나 남들 앞에 서는 일에 자신이 생겼다. 이처럼 부모는 참으로 좋은 조언자다.

“부모는 수시로 자녀들과 의사소통을 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너는 이 길로 가라.’ 라고 강요하면 안 돼요. 하고 싶은 일을 하게 하다가 이러저러한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묻고 그 해결방안을 본인이 고민하고 정하도록 해야죠. 아이는 자신이 생각하고 정하며 책임을 느낍니다. 자신의 꿈을 위한 조건도 꼼꼼히 따지게 되고요. 공부를 하지 않거나 실력을 쌓지 않고는 이룰 수 없는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되죠. 부모는 자녀들이 원할 때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기만 하면 됩니다.”
자녀가 생의 목적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목적을 찾을 때 고려할 것이 무엇인지 옅지만 큰 밑그림을 제시해야 한다.

전혜성 박사는 ‘덕승재(德勝才)’ 정신을 가르쳤다. 재주가 모자라도 덕망이 있으면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 뜻한 바가 있으면 재물은 절로 따라온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었다. 어린 시절, “1등 했다고 자랑하지 마라. 2등 한 친구가 섭섭하다”고 하던 어머니의 말씀을 늘 가슴에 품고 살았다. 덕승재 정신을 배운 전혜성 박사의 자녀들은 재물과 명예를 탐하지 않았다. 의사가 되어 큰돈을 벌 수 있어도 가난한 사람을 돕는 일에 앞장서고, 돈되는 연구가 아니라 세상에 이바지하는 연구를 했다. 그것이 오히려 더 큰 명예, 남들보다 더 많은 연구비로 돌아왔다. 자신만을 위한 일보다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큰사람으로 자랐다.

전혜성 박사가 실행한 작지만 큰 자녀교육 노하우 3
1 자녀와 둘만의 대화시간을 가져라. 아이가 생의 목적을 알게 하려면 대화를 많이 해야 한다. 작정하고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상황에서 둘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다. 여러 아이 중 한 아이가 우울해하면 “쇼핑가자.”, “설거지 도와줄래?”라고 하면서 대화를 신청했다. 머리 손질을 마치고 목에 분을 발라주면 아이는 “엄마, 여기도 더 발라주세요.” 하면서 진짜 속마음을 털어놓는 경우가 많았다.

2 가족회의를 열어라. 사소한 문제일지라도 온 가족이 모여 회의를 해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좋다. 아이들에게 사회자 역할을 맡기니 의견을 중재하고 조율하는 법을 익히는 것이 보였다. 자녀를 한 개인으로서 존중하면 그들도 책임감을 느끼고, 한마디 말이라도 함부로 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3 온 가족이 같은 경험을 공유하라. 잠시 한국에 머무는 사이 가까운 지인이 돌아가셔서 자녀들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어떤 아이는 추도사를 하고, 어떤 아이는 일의 진행 과정을 보고했다. 평소 많은 경험을 함께했기에 부모가 부재중인 상황에서도 부모가 했던 모습을 상기하며 각자의 역할을 거뜬히 해냈다.
 여성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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