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 20일 금요일

나이테처럼 역사에도 ‘눈금’ 있다

태정태세 문단세, 예성연중 인명선, 광인효현 숙경영... 학창시절 국사시간에 흔히 중얼거리던 문장이다. 조선시대 역대 왕들의 순서를 외우기 위해 앞글자만 딴 것이다. 이렇게 시간순에 따라 연대를 배열한 개념을 ‘편년’이라 한다.


▲ 남아메리카 대륙의 마야 왕조에서 만든 달력을 살펴보면 시대의 순서뿐만 아니라 정확한 날짜까지 알아낼 수 있다. ⓒWikipedia
유물이 만들어지고 사용된 정확한 연대를 알아내기 위해서는 우선 편년부터 구축해야 한다. 각 순서를 확정지은 다음에는 시대별 유물의 특징을 종합한다. 이를 토대로 특정 유물이 어느 시기보다 앞서는지 뒤처지는지 알아내는 방법을 ‘상대적 연대결정법’이라 한다.

이에 비해 ‘절대적 연대결정법’은 고정된 기준을 이용해 시기를 확정하는 방식이다. 편년의 순서가 확실하고 각 단계가 촘촘히 배열되어 있다면 절대적 연대를 알아낼 수 있다.

숙종 시대에만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있는 유물이 발견되었을 때는 우선 서기 1661년에서 1720년으로 좁힌다. 조선왕조의 편년은 다양한 자료를 통해 연도를 확정지은 기준표이기 때문이다. 숙종 5년에 만들어졌다는 또 다른 기록이 존재한다면 1665년으로 확정지을 수 있는 것이다.

남아메리카 대륙의 마야 왕조에서 만든 달력을 살펴보면 시대의 순서뿐만 아니라 정확한 날짜까지 알아낼 수 있다. 특유의 계산법을 적용해 상상 이상으로 정교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편년의 단계가 촘촘하지 않거나 유물의 특징이 모호해 정확한 시기를 알아내기 어려울 때는 어떤 방법을 사용할까. 이번에는 절대적 연대결정법의 정확성을 높이는 과학적인 방법에 대해 알아보자.

방사성탄소 동위원소의 감소를 통해 정확한 연대 결정
오래된 유물을 소개할 때 빠짐없이 등장하는 용어가 ‘방사성탄소 연대측정법(Radiocarbon Dating)’이다. 우주방사선이 지구 대기권에 부딪히면서 생겨난 방사성탄소를 이용해 정확한 시기를 알아내는 방법이다.

탄소(C-12)는 일반적으로 핵 안에 6개의 양성자와 6개의 중성자가 있다. 그러나 방사성탄소(C-14)는 보통의 탄소보다 2개 많은 8개의 중성자를 가지고 있어서 안정적이지 못하다. 이처럼 원자번호는 같지만 질량수가 다른 원소를 ‘동위원소’라 부른다.

▲ 방사성탄소 연대측정법을 개발한 미국의 화학자 윌러드 리비 ⓒWikipedia
불안정한 방사성탄소는 자연적으로 붕괴하면서 질소 동위원소로 변한다. 이 과정에서 원자의 절반이 붕괴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반감기’라 부른다. 주변 환경이 어떠하든 방사성탄소의 반감기는 언제나 일정하다.

방사성탄소를 이용한 연대측정법을 개발한 미국의 화학자 윌러드 리비(Willard Libby, 1908~1980)는 1949년 방사성탄소 동위원소의 반감기를 5천567년으로 발표했다. 그러나 과학적인 측정과 실험에 의해 방사성탄소의 반감기는 5천730년으로 확정되었다.

1만1천460년이 지나면 원래 존재하던 방사성탄소의 동위원소가 반의 반 즉 4분의1만 남게 된다는 의미다. 가이거 계수기를 이용해 동위원소의 양을 측정하면 특정 물질이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 알아낼 수 있다.

최근에는 가속질량분석법(AMS)이 도입되면서 10밀리그램 이하의 아주 적은 양의 시료만 있어도 정확한 연대를 측정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정도면 유물에 거의 피해가 없다고 봐도 될 것이다.

보정표 이용해야 정확한 연대 확정 가능

그러나 방사성탄소 연대측정법에도 결함은 있다. 첫째는 유물이 다른 물질에 의해 오염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측정된 동위원소가 원래 유물에서 나온 것인지 나중에 묻은 물질에서 유래한 것인지 정확히 구분해야 한다.

둘째는 시기마다 대기 중의 방사성탄소 농도가 달라서 미묘한 수치 변화가 있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지금보다 방사성탄소의 농도가 더 짙었다.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오차가 커져 실제 연대보다 더 최근 것으로 측정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기원전 5천년 즈음의 유물은 그보다 900년 후의 것으로 나올 정도다.

셋째는 1950년 과도한 핵실험으로 인해 방사성탄소의 대기 중 농도가 급격하게 변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방사성탄소 연대측정법에서는 기준을 1950년으로 잡고 ‘그 이전 몇 년(Before Present)’ 하는 식으로 BP연대를 사용한다.

‘3800BP’라 하면 1950년보다 3천800년 전인 기원전 1850년을 가리킨다. 확률오차를 감안해 연대 뒤에 ±100BP를 붙인다.

과학자들은 시대별 목재의 나이테를 분석해서 당시의 기후 상황과 대기 중 방사성탄소 농도의 정확한 수치를 알아냈다.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 ‘방사성탄소 연대측정 보정표’다.

간편하게 이용하려면 영국 퀸즈대학교에서 제작한 캘리브(CALIB, http://calib.qub.ac.uk/calib/)나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제작한 옥스칼(OxCal, http://c14.arch.ox.ac.uk) 등의 보정프로그램을 이용한다.

▲ 영국 옥스퍼드대 방사성탄소 동위원소 연구소(ORAU)가 제공하는 '방사성탄소 연대측정법 보정표' ⓒORAU

자연 상태의 방사성 붕괴 현상은 정확한 주기를 가지고 있으므로 ‘방사성 시계’라 불릴 만하다. 방사성 시계를 이용해 연대를 측정하는 방식은 방사성탄소 연대측정법 이외에도 포타슘-아르곤 연대측정법, 우라늄 연대측정법, 핵분열손상 연대측정법 등 다양하다.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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