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영국 <더 타임스(The Times)>에 실린 ‘스칸디 대디(Scandi Daddy)’ 육아법이 화제다. 아이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며 정서적 교감을 나눈다는 게 이 교육 방식의 요점이다. 북유럽의 아이들은 어떤 교육을 받으며 자랄까. 과연 이 교육 방식을 우리나라에 적용할 수 있을까. 전 세계적으로 이목을 끌고 있는 육아 트렌드에 관한 고찰.
- vol.2 June PREMIUM Babies & Kids
- 약은 약사에게, 육아는 아빠에게?!
유럽에서 한때 아시아의 육아 방식이 주목받던 때가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아이와 부모 사이에 거리를 두고 독립심을 키우는 서양식 육아와 달리 동양에서는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돌보는 적극적인 모계 양육이 일반적이다. 예일대 교수 에이미 추아는 <타이거 맘(Tiger mom)>이라는 저서를 통해 아시아 엄마들의 ‘엄한 교육’, ‘애착 교육’의 중요성을 설파하기도 했다. 미국에서는 아이와 한 침대에서 자거나 한국의 ‘포대기’로 아이를 업어보는 등 여전히 동양의 육아법에 큰 관심을 쏟고 있다.
유럽의 경우 사정이 좀 다르다. 유럽은 요즘 북유럽 스타일에 푹 빠져있다. 북유럽의 실용적이면서도 위트 있는 디자인은 친환경, 웰빙이라는 현대인의 키워드와 잘 맞아떨어진다. 더불어 덴마크•스웨덴•노르웨이의 스칸디나비아 방식 살림법, 인테리어, 육아법 등이 큰 인기를 끌게 된 것. 그중에서도 ‘아빠 육아’는 세간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아이의 교육은 전적으로 여자의 몫이라는 것은 동서양 모두 일맥상통하는 정서다. 아빠가 집안 경제를 위해 돈을 벌어오는 게 당연시되는 것처럼.
아동청소년상담센터 지오의 이현미 소장은 한 가정의 육아는 부모 공동의 몫이라고 말한다. 똑같이 기저귀를 갈고 우유를 먹이라는 말이 아니다. 부모가 각자의 자리에서 제 역할을 수행할 때 형성되는 아이의 균형 있는 정서는 인생의 성공 인자로 작용한다. 아이의 긴 인생을 놓고 보면 큰 유산을 물려주는 것보다 훨씬 더 값진 선물이다. 단, 시기를 놓친 뒤 후회하면 늦다.
스칸디나비아에 속해 있는 나라들은 복지국가로 유명하다. 스웨덴의 경우 1939년부터 정책적으로 육아휴직제를 도입한 이후 부모휴가제가 뿌리 깊게 자리 잡았고, 아빠의 역할을 중시하는 문화 풍토 덕택에 회사에서도 부모 모두의 육아휴직을 권장하는 추세. 부모가 합쳐 총 480일을 신청할 수 있고 390일 동안은 급여의 80%를 지원받는다. 이 가운데 60일은 남자에게만 허용된 기간이라 스웨덴 아빠의 80%이상은 육아휴직을 이행하고 있다.
핀란드에서는 부모가 아이를 기를 경우 3세까지 육아보조금 315유로를 매달 지급한다. 노르웨이는 육아휴직이 끝나도 2세까지 육아비를 현금으로 지원해주고 있다. 아이를 돌보는 아빠가 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인 셈. 이렇듯 스칸디 육아의 첫 번째 원칙은 아이와 최대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정서적 유대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 시기에 부모와의 교류는 아이의 인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특히 아빠와 노는 것은 아이의 성취감, 자존감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엄마에게 업히는 것보다 아빠의 목에 올라탔을 때 아이들은 더 짜릿함을 느낀다. 안전함을 느끼게 하는 엄마와는 달리 아빠의 힘을 이용한 놀이는 아이들에게는 분명 더 신나는 세상이다. 아이들은 이때 강한 아빠와 자신을 동일시하며 높은 성취감과 자존감을 형성한다. 잠들기 전 아빠의 목소리로 듣는 동화책이나 자장가는 엄마의 목소리로 들을 때보다 수면 효과가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스칸디 육아의 또 하나의 키워드는 ‘자상함’이다. 스칸디 대디들은 결코 소리를 지르거나 체벌을 하지 않는다. 대신 아이들을 조곤조곤 설득하거나 단호함으로 다스린다. 그들이 육아에서 가장 단호함을 발휘하는 순간은 아이가 공공장소에서 예절을 지키지 않을 때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이 사회 구성원의 배려이고 역할이라 생각하는 국민 정서는 아이의 교육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우리도 종종 마트나 식당에서 떼를 쓰는 아이를 목격한다. 데굴데굴 구르고 소리 높여 울 때 우리 부모들은 큰소리로 혼내거나 울음을 그칠 때까지 못 본 척한다. 종종 아이한테 지는 경우도 많다. 스칸디 대디는 일단 ‘왜 안 되는지’에 대해 아이에게 충분히 설명한다. 그래도 말을 듣지 않을 경우 화장실로 데려가 움직이지 못하게 제압한 후 눈으로 단호함을 전한다. 이 순간에도 역시 크고 강한 아빠의 권위와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최종 수단은 다시 집으로 데려가는 것이다. 아이에 따라 다 다르겠지만 아이들이 받아들이는 이해의 폭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크다. 이런 과정이 몇 번 반복되다 보면 아이는 남을 위해 자신의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 이처럼 부모의 설득과 이해의 과정을 잘 받아들인 아이는 같은 실수를 반복할 확률이 높지 않지만 충분한 설명 없이 체벌하거나, 윽박지르는 경우 아이는 ‘공포스러워’ ‘이해할 수 없어’ ‘행복하지 않아’라는 부정적인 감정을 내면에 쌓는다.
취학 전에 아이에게 글씨를 가르치지 않는다. 대신 아이와 산책을 자주 나가 자연에 대해 설명하고 아이가 자연을 느끼도록 가이드가 되어준다. 정신적 스트레스보다 육체적 건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몸을 움직이면서 느끼는 즐거움을 일깨우고, 음악을 듣는 기쁨을 먼저 알려준다. 글로벌 디자인으로 급부상한 ‘북유럽 감성’도 여기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유치원에 들어가면 본격적인 성교육을 하는 것도 우리와는 다른 점이다. 성에 개방적인 나라이기 때문에 생식기에 관심이 많아지는 6-7세에 자연스럽게 어떤 역할을 하는지, 얼마나 소중한지 최대한 자연스럽게 알려준다. 이는 성에 대해 부모와 대화하는 것이 금기시되어 있는 동양에서 반드시 배워야 할 건강한 아동 교육법이다.
작은 실천으로 좋은 아빠되기
우리나라 아빠들 입장에서는 ‘대체 어쩌라고?’라는 말이 튀어나올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에도 육아휴직제가 있긴 있다. 아빠, 엄마 각각 1년씩 총 2년을 신청할 수 있다. 육아휴직 급여율은 통상임금의 40%로 하되 50만~100만원까지다. 모럴 헤저드를 막기 위해 육아휴직금의 15%는 복직 6개월 후에 한꺼번에 지급한다. 육아휴직 신청을 거부한 회사는 벌금 500만원을 물게 되어 있지만, 현실적으로 회사 눈치 보느라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이를 돌보고 싶어도 마음 놓고 돌보지 못하는 대한민국 아빠들의 속타는 심정. 꾸준한 인식 전환이 이루어져야 하는 부분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육아휴직을 권장하는 회사와 이 제도를 활용하는 아빠들이 늘고 있다는 보도는 긍정적인 메시지다.
전문가들은 아주 작은 실천으로 좋은 아빠가 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아이와 짧은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다면 임팩트 있는 이미지를 주라는 것. 이야기를 나눌 때는 눈을 자주 바라보고, 아이의 키와 눈높이를 맞추는 것이 좋다. 아이는 아빠와 깊게 소통하고 있다고 느낄 것이다. 우리나라 교육 분위기상 조기교육을 안 시킬 수는 없지만 언제나 강제성을 띠어서는 안 된다. 이 시기의 지적 욕구는 호기심에서 비롯된다. 자꾸 무언가를 알고 싶게 제시하는 것과 공부해라, 외워라 식의 강압적인 학습법은 다르다. 후자의 경우 아이에게 강한 반발감과 지적 욕구에 대한 거부감을 줄 수 있다. 수학 문제를 풀 때는 감정적으로 설명하는 엄마보다는 조리 있게 설명하는 아빠의 교육이 더 효과적이다. 장난감 블록이나 조립도 엄마보다는 아빠가 더 도움을 줄 수 있다. 주말 중 반나절은 아이들에게 시간을 할애하라. 아빠의 진정한 매력은 집 안보다는 야외에서 훨씬 더 발휘된다. 놀이동산이나 자전거 타기처럼 운동량이 많은 활동을 아이들과 함께 한다면 아이는 아빠와의 행복했던 시간을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스칸디나비아식 10대 자녀 양육법
1 가정의 중심은 가족 구성원 전체다.부모가 자녀를 위한다고 해도 나머지 가족이 아이에게 맞추는 방식은 안 된다.
2 폭력•고함은 절대 금지한다조용히 알아듣기 쉽게 타이르는 훈육이 더 큰 효과를 낸다.
3 다른 사회 구성원들에게 맞춰라주변이 조용할 때는 아이도 조용히 있도록 지도한다.
4 종종 자녀들과 함께 밖에서 놀아라바깥의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흙을 만지며 뛰노는 것이
어린이 건강에 좋고 자연스럽다.
5 어린이에겐 단순한 일상이 최고다학원이나 컴퓨터 게임보다는 산책이나 수영을 하며 잘 놀고 잘 먹는 게 최고다.
6 국가는 탁아소에 최고의 지원을 한다덴마크 정부는 각 가정이 탁아소에 아이를 맡기는 비용의 75%를 보조한다.
7 아기는 집 안보다 바깥에서 더 잘 잔다낮잠을 재울 때는 유모차에 태워 산책을 나가는 게 좋다.
8 일곱 살 전엔 글 읽기를 가르치지 않는다글을 일찍 배우지 않아도 북유럽 학생들의 성적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9 블록 장난감을 사줘라아이의 논리와 공간지각능력이 발달한다.
10 성교육은 유치원부터 하라개방적인 성(性) 문화를 가진 북유럽에서는 6~7세부터 성교육을 한다. 그 결과 10대 임신율은 세계 최저 수준이다.
▶ 아이들이 아빠에게 기대하는 정서는 어떤 건가?아이들에겐 기본적으로 액티브한 정서가 있다. 아이들은 ‘아빠와 놀 때 엄마와는 많이 다른데?’라고 느낄 것이다. 목말을 타면 훨씬 더 높이 올라가고, 클라이밍을 할 때 뒤에서 받쳐주는 힘이 더 안정적이고, 더 힘든 일도 척척 해내는 사람으로 인식한다. 이런 상호작용을 통해 아빠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자신감을 쌓는다. 아이들은 몸을 통해 자기를 확인하고, 체험하고, 확인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여기에서 아빠가 주는 역할은 클 수밖에 없다. 아빠의 안정된 교육을 받고 자란 아이들은 정서적으로 균형 있게 성장한다.
▶ 우리나라 실정에서 아빠가 아이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는 건 힘들다. 최소한 할애해야 하는 시간은?아이들은 사실 매일 아빠를 기다린다. 온종일 그 시간만 기다렸는데 들어온 아빠가 씻고, 밥 먹고, 뉴스 보고, 신문 보고, 인터넷 다 보고 놀아준다고 하면 아이들은 그만큼의 좌절을 맛보게 될 것이다. 퇴근하고 문에 들어선 순간 아이들을 꼭 안아주며 “아빠도 하루 종일 네가 보고 싶었어.” “오늘 하루 뭐하고 지냈어?”라고 말해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의 피로감은 해소된다. 평일엔 30분, 주말엔 반나절 정도를 할애하는 것이 최상이지만 힘들다면 10~15분만이라도 서로 교감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좋다.
▶ 엄하고 가부장적인 한국의 아버지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우리 사회에서 아이 교육은 모두 엄마 몫인 경우가 많았다. 성인이 되어서도 아빠와 거리감을 좁히지 못하는 사람은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일종의 부작용이다. 친밀감은 주지 않으면서 권위만 내세우는 존재로 인식되고 나면 아이들은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다. 아빠와 정서적 교류가 부족한 아이들이 사춘기에 반발심이 더 큰 양상을 보인다. 요즘은 우리나라도 따뜻하고 자상하게 아이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젊은 아빠가 늘고 있다.
▶ 엄한 교육의 필요성도 있지 않나?스칸디나비아의 육아에도 분명 엄하고 단호한 훈육이 존재한다. 아이들이 욕구 조절을 하지 못할 때는 확실한 가이드라인을 주어야 한다. 그러나 지적인 면에서는 압박을 가하기보다 제안하고 격려를 하고, 실수했을 때 문제를 해결해주는 방식이 훨씬 긍정적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이 두 가지 교육법이 반대로 이행되는 경우가 많다. 공부하라는 협박과 잔소리를 들은 아이의 경우 사춘기 이후에 학습에 대한 흥미를 잃고 방황하는 수가 있다. 어릴 때의 지적 호기심은 자발적 동기에 의해 스스로 알아갈 때 가장 큰 효과를 낳는다. - 조선일보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