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 15일 일요일

음식은 유대감과 사회화에 왜 중요한가

기출문제
[사]에 담긴 음식의 의미를 토대로 [가]∼[바]의 글을 모두 활용하여 ‘음식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논술하시오.(25점)

<2009학년도 이화여대 수시 4번>

[사] 지난 여름이었습니다. 가세가 기울어 갈 곳이 없어진 어머니를 고향 이모님 댁에 모셔다 드릴 때의 일입니다. 어머니는 차시간도 있고 하니까 요기를 하고 가자시며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한평생 중이염을 앓아 고기만 드시면 귀에서 고름이 나오곤 했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나를 위해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시는 마음을 읽자 어머니 이마의 주름살이 더 깊게 보였습니다. 설렁탕집에 들어가 물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습니다.

“더울 때일수록 고기를 먹어야 더위를 안 먹는다.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 고깃국물이라도 되게 먹어둬라”

설렁탕에 다대기를 풀어 한 댓 숟가락 국물을 떠먹었을 때였습니다. 어머니가 주인 아저씨를 불렀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뭐 잘못된 게 있나 싶었던지 고개를 앞으로 빼고 의아해하며 다가왔습니다. 어머니는 설렁탕에 소금을 너무 많이 풀어 짜서 그런다며 국물을 더 달라고 했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흔쾌히 국물을 더 갖다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주인 아저씨가 안 보고 있다 싶어지자 내 투가리에 국물을 부어주셨습니다.

나는 당황하여 주인 아저씨를 흘금거리며 국물을 더 받았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넌지시 우리 모자의 행동을 보고 애써 시선을 외면해주는 게 역력했습니다. 나는 그만 국물을 따르시라고 내 투가리로 어머니 투가리를 툭, 부딪쳤습니다 순간 투가리가 부딪치며 내는 소리가 왜 그렇게 서럽게 들리던지 나는 울컥 치받치는 감정을 억제하려고 설렁탕에 만 밥과 깍두기를 마구 씹어댔습니다. 그러자 주인 아저씨는 우리 모자가 미안한 마음 안 느끼게 조심, 다가와 성냥갑만 한 깍두기 한 접시를 놓고 돌아서는 거였습니다. 일순, 나는 참고 있던 눈물을 찔끔 흘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얼른 이마에 흐른 땀을 훔쳐내려 눈물을 땀인 양 만들어놓고 나서, 아주 천천히 물수건으로 눈동자에서 난 땀을 씻어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눈물은 왜 짠가.

함민복, 「눈물은 왜 짠가」

〈보기〉

명절 차례상 차림은 가가례(家家禮)에 따른다. 지방에 따라, 가풍에 따라 조금씩 형식이 다르다는 이야기다. 그래도 대동소이하다. 차례상은 북쪽에 둔다. 젊은 후손이라면 집안의 어른이 차례 때 따르는 ‘5열 7원칙’을 기억해 두면 좋다.

7원칙은 4자의 한자로 표현된다.

음식 배열에 관한 성어가 주된 말들로 표현은 이렇다. 먼저 좌포우혜(左脯右醯). 포는 왼쪽, 식혜는 오른쪽에 둔다. 생선과 고기의 위치를 설명한 어동육서(魚東肉西)에 따라 어류는 동쪽, 육류는 서쪽에 둔다. 머리와 꼬리가 구별되는 음식의 머리는 동쪽, 꼬리는 서쪽을 향하게 둔다. 두동미서(頭東尾西)라 한다. 조율이시(棗栗梨枾)는 과일 배치 순서로 대추·밤·배·감의 순서로 둔다.

색깔에 따른 분류도 있다. 홍동백서(紅東白西)로, 붉은 색깔의 과일은 동쪽, 하얀색 과일은 서쪽에 둔다. 날것과 익힌 것에 따른 자리 배치는 생동숙서(生東熟西)를 따른다. 김치는 동쪽, 익힌 나물은 서쪽에 둔다. 밥과 국의 위치를 표현한 좌반우갱(左飯右羹)에 따르면 밥은 왼쪽, 국은 오른쪽에 둔다. 이때 지방(신위)을 모신 곳이 북쪽, 제주(祭主)가 상을 봤을 때 오른쪽이 동쪽이다.

상차림은 총 5열이 기본이다. 제주와 가장 멀리 있는 곳을 1열로 삼는다.
상차림은 열마다 홀수로 배열한다. 신위를 기준으로 1열에는 밥과 잔을 올린다. 반서갱동의 원칙이 적용된다. 서쪽부터 떡국 잔반(술잔과 받침대) 시저(숟가락과 젓가락) 잔반 떡국을 놓는다. 2열에는 어동육서에 따라 국수 전 육적(고기 구운 것) 소적(채소 구운 것) 어적(생선 구운 것) 고물 떡을 놓는다. 이때 두동미서 원칙에 따라 생선 머리는 동쪽으로, 꼬리는 서쪽으로 향하게 놓는다.

차례는 옛날에는 조상에게 차를 올리는 의식이었다. 설날은 추석과 일반 제사와 마찬가지로 일련의 행사 속에 차례가 포함됐다. 형식과 절차는 간소하게 변하더라도 후손들이 뜻을 잇고 있는 이유다.

3열에는 주로 탕을 놓는다. 탕의 개수는 1, 3, 5와 같은 홀수로 맞춰야 한다. 고기 채소 생선을 끓인 육탕 소탕 어탕을 놓는다.

4열에는 좌포우혜와 생동숙서의 법칙이 통용된다. 서쪽 첫 번째에는 북어, 고기, 오징어, 문어 중 한 가지를 말린 포로 놓는다. 이어 숙채, 청장(간장), 침채(흰 나박김치), 식혜 건더기를 놓는다.

마지막 줄은 조율이시와 홍동백서를 따른다. 밤 배 곶감 약과 강정 사과 대추를 차례대로 놓는다. 제기에 과일을 올릴 때는 조상을 위해 정성으로 다듬어 놓는다는 의미로 홀수 개를 놓는다. 과일의 위아래는 깎아 놓는다. …후략…

〈2012년1월20일자 세계일보〉


세계일보
김정희 강남인강 대입논술강사·㈜C&A 논술 고등부 대표강사
이화여대 2009학년도 수시 논술 문제에서는 일상생활에서 친숙한 음식 문제를 중심으로 지문의 독해 능력과 비교와 대조를 구성하는 논점 파악 능력을 평가하였다. 음식의 사회화 문제나 경제화(상품화) 그리고 음식이 문명화되는 과정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가진 제시문으로 구성된 것을 독해하여 ‘음식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견해 논술로 확장해나가는 유형의 문제였다.

곧 추석이 다가오고 있다. 온 가족이 모여 조상들에게 바칠 음식을 만들고 그 음식을 나누어 먹으면서 돈독한 정을 다지게 될 것이다. 음식은 단순히 생리적으로 배고픔을 충족시키는 의미를 넘어 사회적 문화적 의미를 가지게 된다. 온 가족이 함께 모이는 한가위를 맞아 음식이 가진 사회·문화적 의미를 이화여대 기출 문제를 통해 한 번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공동식사의 의미

논제의 요구조건대로 따라가면 공동식사를 바라보는 두 관점이 있다. 우선 부정적 측면이다. 수직적 위계질서에서 까다로운 식사예절을 강조하는 공동식사는 배타성을 높인다. 음식을 반드시 개인 접시에 담아 먹어야 하고, 상하구분을 통해 자신의 순서를 기다려 음식을 먹어야 하는 과정에서 공동식사는 서열화되고 까다로운 위생관념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긍정적 측면도 있다. 공동식사를 통해 이기주의적 배타성이 철저하게 극복된다. 고대 셈족에게 공동식사는 신의 신탁에 함께 참석해 형제의 관계를 맺음을 의미했다. 아랍인에게는 공동으로 먹고 마시는 것이 ‘철전지 원수’를 친구로 바꾸기도 하는 사회화의 효력을 발생시킨다. 결국 철저히 개인적이고 이기적일 수 있는 먹는 행위가 사람들과의 유대감을 형성하고 공동체의식을 고양할 수 있다. 즉 공동식사는 먹고 마시는 행위를 통해 사회적 관계를 맺는 행위로 연대감 형성에 기여할 수 있다는 입장과 공동식사는 상호작용이 배제된 채 서열화나 위생관념 등의 문제로 오히려 비사회적 행위를 유발할 수 있다는 입장으로 나눌 수 있다.

◆음식이 문명화되는 과정에서 음식과 인간의 관계

우선 음식이 탈자연화되는 과정에 대해 긍정적 관점이다. 식재료가 상품화되어 슈퍼마켓에 진열되는 것은 소비자에게 심리적 위안을 제공한다. 소비자가 직접 식재료를 죽이는 과정을 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깨끗하게 손질돼 포장된 닭 부위는 심리적 위안뿐 아니라 위생적으로 처리돼 소비자의 편의를 돕는다.

다음으로 음식이 탈자연화되는 과정에 대해 부정적인 관점이다. 소와 인간의 관계를 통해 음식과 인간, 혹은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강조한다. 고대에 인간은 소를 경외의 대상으로 바라보며 영원한 재생의 주기에 동참하기 위해 소고기를 먹었다. 그러나 문명화되는 과정에서 인간은 자연을 지배하기 위해 소고기를 먹었다. 이제 우리는 소고기를 먹지 않음으로써 새로운 소와 인간의 관계, 즉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자연은 정복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인간의 협력자이자 공존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앞의 두 관점이 통합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일본식 전골요리를 통해 자연화와 탈자연화의 공존을 보여준다. 날 것이 먹는 사람 앞에서 요리되는 과정은 영예로운 날 것의 죽음을 신성시하는 것이다. 이 ‘날 것의 황혼’에 참여함으로써 인간은 영양분의 이동으로 생명에너지를 받아들인다. 즉 인간은 음식이 탈자연화·문명화되는 과정에 동참함으로써 자연과의 공존이 가능함을 보여주고 있다.


세계일보
추석 때 온 가족이 조상에게 바칠 음식을 만들고 그 음식을 나눠 먹으면서 돈독한 정을 다지듯, 음식은 단순히 배고픔을 충족시키는 것을 넘어 사회·문화적 의미를 갖는다. 사진은 추석 차례상 차리기 행사에서 어린이들이 추석의 의미와 차례음식의 의미 등에 대해 배우고 있는 모습.세계일보 자료사진

◆음식과 인간의 관계


제시문에는 가난한 모자 이야기가 나온다. 기거할 곳이 없을 정도로 가난한 어머니와 아들은 헤어져 살아가야 하는 상황이다. 친척집에 어머니를 모셔다주러 가는 길에 어머니의 권유로 설렁탕 집을 찾아간다. 중이염으로 고깃국을 먹지 못하는 어머니가 아들 생각에 설렁탕을 시키고, 국물이 짜다며 국물을 더 달라고 한다. 그리고 그 국물을 아들 설렁탕 뚝배기에 부어준다.

이를 애써 못본 체하며 깍두기를 더 가져다 주는 설렁탕 주인까지 등장하면서 설렁탕은 음식 이상의 의미를 가지게 된다. 이 때 설렁탕은 가난과 설움의 상징이었다가 모자간의 사랑, 더 나아가 인간과 인간 사이의 사랑으로 확장된다.

인간에게 음식은 생존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앞서 살펴 봤듯, 공동식사는 사회화에 기여한다. 물론 공동식사 과정에서 나타나는 서열화와 까다로운 위생관념은 배타성을 증진시킬 수 있지만 이러한 부정적 측면은 극복 대상이다. 제시문에서처럼 가난한 모자 앞에 놓인 설렁탕 한 그릇은 가난과 고통을 극복하는 따뜻한 인간애이다. 음식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 존재하는 사랑과 배려의 상징이다.

음식을 단순히 이윤추구라는 경제논리로만 바라보면 빈부격차나 가난의 문제는 해결될 수 없고 가난과 소외의 문제는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오히려 음식을 통해 이러한 빈부격차의 문제나 가난의 문제를 넘어 모두가 하나라는 연대의식을 형성할 수 있어야 한다. 더 나아가 음식의 자연화와 탈자연화를 바라보면서 특정 관점이 옳고 그르다는 판단보다는 자연화와 탈자연화를 반성적으로 바라보며 현명하게 대처해야 한다. 문명화되는 과정에서 음식 또한 탈자연화의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지만 식재료에 대한 무분별한 살생은 인간과 자연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을 망각한 행위이다.

음식과 인간이 하나라는 생각, 자연과 인간은 먹이사슬로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전제되었을 때 음식은 인간에게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음식은 인간에게 정서적 유대감을 높여주고 사회화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이것이 바로 음식이 단순히 음식자체만은 아닌 이유이다.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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