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 17일 화요일

“학원 대신 바다로 아이보다 내가 더 행복해”

아이 교육 위해 제주 정착 
“우리 아이 영어 유학? 이젠 외국으로 보내는 대신 제주로!” 이런 생각으로 제주 유학을 온 초·중·고 학생이 1500명에 이른다. 제주 영어교육도시 내에는 2011년 9월 가장 먼저 개교한 공립국제학교 KIS(Korea International School, 고교 과정은 사립)를 비롯해서 영국에 본교가 있는 NLCS(North London Collegiate School), 캐나다 명문 사립학교의 한국캠퍼스인 브랭섬홀아시아(Branksoom Hall Asia) 등 3개 학교가 있다. 이들 국제학교는 본교의 커리큘럼을 그대로 옮겨왔다. KIS는 미국서부교육연합회의 인증을 받은 미국식 커리큘럼을 따르고 있다. 수업은 영어로 진행하고 국어·사회만 한국어로 한다. 교과 과정은 국내 학교와 다르지만 모두 학력 인정을 해준다.
제주에 국제학교가 생기면서 아이들 교육을 위해 부모가 아예 제주로 삶터를 옮기는 ‘교육 이민’이 늘고 있다. KIS 3학년에 재학 중인 최다인양의 엄마 강유정(35)씨도 2011년 제주시 주민등록부에 이름을 올렸다. 강씨는 KIS 첫 신입생으로 입학한 딸 다인과 다섯 살인 아들을 데리고 제주로 내려왔다. 남편은 직장 때문에 서울에서 혼자 생활한다. 만만찮은 교육비를 대야 하기에 탄탄한 직장을 그만둘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아이를 위해 제주에 내려온 대부분은 강씨처럼 ‘주말 가족’이다.
지난 9월 3일 제주시 노형동의 한 카페에서 강유정씨를 만났다. 노형동은 아파트, 편의시설 등이 잘 갖춰져 있어 국제학교 때문에 제주에 온 사람들이 선호하는 곳이다. 강씨는 “이쪽에 집 구하기가 쉽지 않다”면서 “평당 1000만원을 넘는 곳도 있다”고 말했다. 아이 때문에 제주에 내려왔지만 정작 아이보다는 강씨가 제주를 더 즐기고 있었다. 강씨는 아예 서귀포시 중문에 프랜차이즈 햄버거 가게 ‘크라제버거’까지 차렸다. “10~20분 거리에 바다와 산이 있고, 안전하고, 교육시스템도 안정돼 있고, 서울에 살 때와는 다르게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강씨는 서울에서 교육열로 손꼽히는 목동에서 살았다. 그렇다고 교육에 올인한 ‘목동엄마’는 아니었다. ‘옆집 엄마’ 따라하기엔 너무 바쁜 여행사 직원이었다. 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워킹맘’의 한계가 느껴졌다. 주변 엄마들을 따라하자니 힘들었고 손 놓고 있자니 불안했다. 강씨는 제주에 내려온 후 사교육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어졌다고 했다. “서울에선 아이가 학교 끝나면 돌봐줄 사람이 없으니 학원으로 돌릴 수밖에 없잖아요. 또 학원에 가면 레벨에 따라 그룹이 만들어지고 친구가 형성되고. 학원에 보내기 위해 집에서 공부를 가르쳐야 하는 일이 벌어져요. 학교보다 학교 밖 생활이 메인이 되죠. 여기에선 아이 목에 위치추적 스마트폰 걸어주고 학원으로 내몰지 않아도 되니 너무 좋죠. 방과 후 활동이 의무사항이기 때문에 5시까지는 학교 안에서 모든 것이 안전하게 이뤄져요.”
강씨가 학교를 신뢰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고 한다. 입학 초기 다인이가 적응은 잘하고 있는지 걱정이 됐다. 안 되는 영어로 이메일을 써서 외국인 담임 선생님에게 보냈는데 답변이 없었다. 일주일 후 기다리다 지쳐 화가 날 때쯤 이메일이 왔더란다. 이메일에는 ‘체육·음악 등 다른 과목 담당 선생님에게 제시카(다인이의 영어 이름)가 어떻게 지내는지 물어보고 적느라 늦어졌노라’는 설명이 적혀 있었다.
강씨는 일반 학교보다 성적에 대한 부담도 훨씬 적다고 했다.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 “여긴 시험을 언제 보는지 몰라요. 날짜를 안 가르쳐주니까. 대신 아이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평가 대상이에요. 수업시간에는 마음대로 돌아다녀도 되지만 오히려 교실 밖에서는 라인을 지켜서 걸어야 해요. 평가가 굉장히 구체적인 것이 일반 학교와 다른 것 같아요.”
서울 강남구 대치동 분위기에 익숙한 엄마들은 국제학교의 자유분방한 분위기에 실망해서 다시 아이를 서울로 전학시키는 경우도 많다. 아예 처음부터 영어를 목표로 1~2년만 계획하고 오는 경우도 있다. 강씨는 교육 목표에 따라 떠나는 사람과 남는 사람이 나눠진다고 했다. “바닷가로 돌 주우러 다니느라 양말이 새까맣게 돼서 오는가 하면 평가도 너나 없이 ‘A’ 일색이고, 공부는 뒷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죠. 저도 가끔 불안할 때가 있어요. 그래도 제주에 사는 것이 좋고 학교 커리큘럼을 믿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목적인 사람들은 제주 정착을 선택합니다.”

국제학교 입학은 쉽지 않다. 상대평가가 아니라 학생들 한 명 한 명 개별 평가를 한다. 학교가 원하는 수준이 되지 않으면 정원이 차지 않았어도 뽑지 않는다. KIS도 초·중학교 과정 정원이 500명인데 학생 수는 311명이다. 학비도 비싸다. 학년별로 조금씩 차이가 나는데 세 학교 중에 가장 저렴한 KIS의 경우 기숙사비를 제외한 1년 수업료는 1800만~1900만원 선이다. NLCS와 브랭섬홀아시아는 1년 수업료만 2500만~3000만원에 이른다. 때문에 ‘귀족학교’라는 비판이 있다. 강씨도 “학교 앞에 아이를 데리러 갔다가 값비싼 외제차가 즐비해서 G20 정상회담이 열린 줄 알았다”고 말하며 웃었다.
강씨가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아빠의 빈자리’다. “한창 자라는 아이들이 매일 아빠를 볼 수 없어 미안하죠. 대신 주말에 내려오면 온전히 모든 시간을 함께 보내요. 서울보다 이동 시간도 적고 학원도 안 보내니 시간적으로 훨씬 여유로워요. 맛있는 것도 먹으러 가고 새까맣게 타도록 실컷 놀려요. 양보다 질을 높이는 거죠.”

생활하는 데 불편한 점도 많다. 서울에 비해 문화시설도 적고 백화점도 없고 물가도 생각보다 비싸다. 강씨는 “삶의 가치와 교육의 목표를 어디에 두느냐의 문제 아니겠느냐”고 했다. 아이가 학교 가는 길을 즐거워하는 것에 만족하기보다 성적 올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바다와 하늘을 보는 여유보다 생활의 편리함을 추구한다면 제주 이민은 적절한 선택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주간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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