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대표적 여름 휴양지 중 하나인 콘월 지방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식물원인 에덴 프로젝트가 있다. ‘바이옴’이라고 불리는 벌집 모양의 거대한 돔 8개가 이어져 있는 이곳은 모두 돌아보는 데 반나절 이상 걸릴 정도로 규모가 크다.
축구장 서너 개를 합쳐 놓은 크기의 이 거대한 비닐하우스는 특수 철골을 이용해 수백 개의 육각형으로 만든 골격에다 첨단 투명 플라스틱인 불소수지필름(ETFE)을 씌워 놓은 형태다. 건축 설계 디자이너들이 바이옴을 벌집 모양의 육각형 구조로 만든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최소 면적에 최대의 식물군을 담을 것과 최소한의 철골 구조를 사용해 최고로 튼튼한 구조물을 지어야 한다는 당초의 지시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벌집의 육각형 구조는 가장 경제적이고 과학적인 구조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벌들은 자연계 최고의 건축 전문가로 대접 받아 왔다. 벌집의 이러한 과학적 구조에 처음 주목한 이는 서기 4세기경 알렉산드리아의 수학자인 파프스였다.
▲ 꿀벌들은 육각형을 선택함으로써 벌집 무게의 무려 30배나 되는 양의 꿀을 저장할 수 있는 가장 경제적인 구조의 집을 짓는다. |
그는 자신이 펴낸 ‘수학집성(數學集成)’이라는 책에서 “꿀벌들은 꿀을 저장하기에 알맞은 그릇을 만들었는데 그 그릇은 불순물이 끼지 못하도록 서로 빈틈없이 연이어 있는 형태를 지닌다. 그런데 동일한 점을 둘러싼 공간을 빈틈없이 채울 수 있는 도형은 정삼각형, 정사각형, 정육각형의 세 가지밖에 없다. 꿀벌들은 본능적으로 정육각형을 택했고, 이 형태는 다른 두 가지 형태보다 훨씬 많은 꿀을 채울 수 있다.”며 꿀벌들의 기하학적 예지력을 칭송했다.
또한 1965년 헝가리의 수학자 페예시 토트는 “최소의 재료를 가지고 최대의 면적을 지닌 용기를 만들려 할 때 그 용기는 육각형이 된다”며 벌집 구조의 신비를 수학적으로 증명하기도 했다. 변이 곧은 요철형 다각형 가운데 정육각형이 가장 효율이 높은 도형임을 길고 복잡한 수식을 동원해 밝혀낸 것이다.
육각형은 균형 있게 힘을 배분하는 안정적인 구조
꿀벌의 몸은 거의 원통형에 가까우므로 원형의 집을 짓는 것이 드나들기에 편하다. 또 개체별 독립생활을 하는 생물들의 집도 대부분 원형이다. 그러나 벌들은 최소한의 재료로 최대한의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육각형의 집을 지었다.
만약 꿀벌이 원형으로 집을 지었다면 사이사이에 못 쓰는 빈 공간이 생기므로 공간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없다. 하지만 꿀벌들은 육각형을 선택함으로써 벌집 무게의 무려 30배나 되는 양의 꿀을 저장할 수 있는 가장 경제적인 구조의 집을 지었다.
벌집의 육각형은 가장 균형 있게 힘을 배분하는 안정적인 구조이기도 하다. 정삼각형으로 집을 지으면 재료가 많이 필요하고 공간이 좁아지며, 정사각형의 경우 외부의 충격이 분산되지 않아 쉽게 찌그러지기 쉽다. 그러나 정육각형은 외부의 힘이 쉽게 분산되는 구조여서 아무리 세찬 바람이 불어도 끄떡없을 정도로 튼튼하다.
따라서 벌집의 육각형 구조는 건축물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응용되고 있다. 예를 들면 골판지의 단면은 육각형으로 처리되어서 가볍지만 강도가 뛰어나다. 또 고속열차 KTX의 앞부분의 허니콤이라는 충격흡수장치도 벌집처럼 육각형의 구조로 되어 있다. 이로 인해 허니콤은 시속 300㎞로 달리는 열차가 700㎏의 물체와 부딪쳐도 그 충격을 흡수할 정도로 성능이 뛰어나다.
그런데 벌집이 정교한 육각형으로 구성된 것은 꿀벌들이 뛰어난 건축 전문가여서가 아니라 자연의 단순한 물리적 힘의 소산 때문이라는 주장이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대표적인 이가 17세기 덴마크의 수학자인 에라스무스 바르톨린이다. 그는 비눗방울을 서로 빽빽하게 쌓으면 저절로 육각형 모양을 띠게 되는 현상을 예로 들며, 벌집의 육각형도 꿀벌들이 일부러 그렇게 지었기 때문이 아니라 최대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자연적으로 탄생하는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1917년 스코틀랜드의 동물학자 톰슨은 말랑말랑한 밀랍에 표면장력이 작용해 벌집이 저절로 육각형이 된다고 주장했다. 2004년 독일의 크리스티안 피르크는 녹인 밀랍을 빽빽하게 배열된 원통형 고무용기에 부은 결과 밀랍이 식으면서 육각형 모향으로 굳어지는 것을 실제로 입증해 보이기도 했다.
벌집의 육각형은 표면장력 때문이라는 연구결과 발표
이로 인해 벌집이 꿀벌들의 정교한 건축공학의 소산인지 아니면 단순한 물리학적 원리의 귀결인지를 놓고 오랫동안 논란이 이어져 왔다. 그런데 최근 꿀벌들이 처음엔 원형으로 벌집을 짓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표면장력에 의해 육각형으로 변한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규명한 실험 결과가 발표되었다.
영국 카디프 대학의 공학자인 부샨 카리할루 연구팀은 한창 새로 만들어지고 있는 벌집에 연기를 뿜어 벌들을 내쫓은 후 벌집 내부를 들여다보았다. 그 결과 가장 최근에 지는 벌집은 원형을 지닌 데 반해, 조금 더 오래된 집은 육각형 모양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연구진의 심층분석 결과 꿀벌들은 일단 벌집을 만든 후에 체온을 이용해 밀랍을 가열시키는데, 밀랍의 온도가 45℃에 이르자 흐물흐물해지면서 액체처럼 유동성을 갖게 된다는 것. 이때 3개의 셀벽(wall of cell)이 맞닿은 부분에서 표면장력이 작용해 원형의 셀이 육각형으로 변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연구결과는 융복합 연구분야의 세계적인 학술지인 ‘로열 소사이어티 인터페이스(Journal of the Royal Society Interface)’ 최근호에 게재됐다.
연구진은 이 실험을 하기 전에 이루어진 선행연구에서 한 줌의 원형 플라스틱 빨대를 가열한 다음 사방에서 압력을 가해 육각형의 횡단면을 이미 얻은 바 있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일부 과학자들은 표면장력이 벌집의 육각형에 기여한다는 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그 과정에서 여전히 꿀벌이 모종의 능동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실제로 꿀벌들은 벌집을 지을 때 꿀이 밖으로 흘러나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벌집의 축을 수평선보다 약간 높게 유지하게끔 만든다. 목수들이 수직 상태를 알아보기 위해 추를 달아 늘어뜨리는 다림줄도 없이 맨몸으로 수직을 측정하는 셈치곤 매우 정밀한 기술이다. 또 꿀벌들은 셀벽의 두께를 고도의 정확성으로 측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같은 정황으로 볼 때 꿀벌들은 혹시 표면장력이라는 자연의 물리적 힘이 가장 이상적인 벌집 구조를 만든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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