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수학자 에핌 젤마노프 교수는 2일 "수학은 2천년 전부터 매우 어려웠고 지금도 어렵지만 매우 중요한 과목"이라며 "특히 과학기술로 먹고사는 한국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1996년 설립된 고등과학원에서 개원초 부터 석학교수로 재직 중인 젤마노프 교수는 이날 언론 인터뷰에서 "수학을 쉽게만 가르치려고 하는 요즘 교육정책을 따르다가 중요한 수학의 본질을 놓칠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젤마노프 교수는 '제한된 번사이드 문제'를 해결해 1994년 39세의 나이에 수학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 메달'을 수상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매년 일정 기간을 한국에서 체류하며 연구활동을 하면서 한국의 술 '백세주'와 토속음식 '감자전'을 좋아하게 됐다고 밝혔다. 올해 여름도 서울에서 보낸 그는 오는 4일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샌디에이고 캠퍼스로 돌아갈 예정이다.
이날 인터뷰에는 젤마노프 교수와 수년간 친분을 다진 금종해 신임 고등과학원장이 함께했다. 금 원장은 "한국도 열심히 하면 빠르면 10년, 15년 안에 필즈 메달을 수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다음은 젤마노프 교수와의 일문일답.
-- 한국에서 연구하게 된 계기는.
▲ 한국을 처음 방문한 것은 1992년이다. 4대 고등과학원장인 명효철 박사와 친분이 있었다.
-- 한국 수학계가 발전했다고 보는가.
▲ 한국은 약 20년 전인 그때와 완전히 달라졌다. 당시 한국의 수학은 척박했지만 지금은 논문 수 기준 세계 12위권인 선진국 문턱에 와 있다고 본다.
-- 한국에서 수학 수업 범위를 줄이자는 의견이 나오는데.
▲ 수학은 2천년 전부터 이어진 매우 중요하고 오래된 과목이다. 그때도 어려웠고 지금도 어렵다. 하지만 과학과 기술에 매우 중요하고 기본적인 역할을 한다. 이는 한국에서 수학이 중요한 이유다. 수학을 줄이고 쉽게 만들자고 하는 것은 인기에 영합한 정책(popular approach)이 될 수 있다. 수학을 쉽게 가르친다는 것은 본질을 뺀다는 말이 될 수 있다. 더욱 최적화된 방법으로 조정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쉬워진다고 해서 많은 학생이 수학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 수학을 너무 일찍 배웠다가 흥미를 잃는 경우가 있다. 수학에 대한 재능을 발견할 수 있는 시기는 언제인가.
▲ 수학은 창의적인 생각을 하는 학문이다. 저는 13살에 수학자가 되기로 했다. 중학생이던 그때 좋은 선생님을 만났다. 그 선생님은 내가 수학을 하도록 격려해주고 흥미를 갖도록 유도해줬다. 수학을 단순히 강요하는 극성스러운 학부모들이 교육에 성공할 수도 있겠지만, 좋은 '해설가'는 키워도 창조적인 일을 하는 '작곡가'는 키우기 어려울 것이다.
-- 어려운 수학을 연구하는 원동력이 무엇인가.
▲ 수학자로 사는 게 인생이자 생활이 됐다. 수학이 매우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수학 안의 논리성을 이해하면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다.
-- 수학 시간에 계산기를 사용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 계산기를 쓰더라도 계산 이면의 원리를 이해해야 한다. 단순한 계산 노동을 하기 싫어서 보완적으로만 사용하는 경우에는 괜찮다고 본다. 계산만 잘해서는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수학에서 중요한 것은 다양한 상황을 한꺼번에 보는 통찰력이다.
-- 요즘 연구하는 분야는.
▲ 대수학(algebra·代數學)의 군론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대수는 계산과 논리의 기반인데 요즘 새로 등장한 난제들을 풀고 있다.
-- 국제 수학올림피아드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한국 학생들에게 조언한다면.
▲ 올림피아드는 스포츠와 같아서 훈련이 잘된 아이들이 나간다. 올림피아드 성적이 좋으면 좋은 수학자가 될 수 있지만, 그렇지 않고도 좋은 수학자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메달을 땄다고 모든 걸 다 이뤘다고 생각지 말고, 메달을 따지 못했다고 포기해서는 안 된다. 유럽은 올림피아드 상위권 학생을 배출하진 않지만, 수학계에서는 항상 상위권을 달린다.
-- 필즈 메달을 수상한 배경은.
▲ 단지 수학이 좋아서 연구한 결과다. 필즈 메달이 목표는 아니었다. 당시 제한된 번사이드 문제는 러시아에서 모든 사람이 풀려고 했던 문제였다. 본격적으로 이 문제에 매달린 건 2년간이었다. 매우 어려웠지만 당시 무엇을 하든 누구와 만나든 머릿속에 이 문제가 있었다.
-- 한국을 좋아하는 이유는.
▲ 한국은 제2의 고향이다. 대답하기가 쉽지 않다. 미국에서는 강의도 하고 여러 가지 일이 많지만 한국의 고등과학원에서는 연구에 집중할 수 있어서 좋다. 연구가 잘 된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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