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아이의 능력만 되면 보내고 싶어하던 학교였지만, 갑자기 언론에서 한목소리로 타도 대상 귀족학교로 매도하는 현실이 낯설고 그 안의 진실은 무엇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특히 궁금했던 것은 ‘영훈’의 네임밸류 였습니다. 영훈국제중과 대원국제중은 영훈초등학교와 대원외국어고등학교의 명성을 등에 업고 2008년 말 국제중으로 지정(指定)됐습니다. 영훈초와 대원외고가 학부모들 사이에서 절대적인 지위를 갖고있지 않았더라면 국제중으로 지정조차 어려웠을 것입니다.
영훈초등학교는 서울 강북구 미아5동의 재래시장 골목에 있습니다. 영훈의 명성을 듣고 입학설명회나 원서접수를 위해 처음 학교를 찾은 학부모들은 깜짝 놀랍니다.
영훈초는 ‘전통적인 명문’은 아니었습니다. 전통의 명문 사립초라면 경기, 경복, 리라, 이대부속 등이 꼽힙니다. 이 사립초들은 시설과 교육의 질도 차별화되지만 과거부터 부유층 및 권력층이 자제들을 보내왔기에 ‘인맥’이 확실합니다.
- 서울시 강북구 영훈국제중 교문. © News1
◇경기초 졸업한 이재용 부회장이 왜 아들을 미아동의 영훈초로 보냈나?
그러나 언젠가부터 흐름이 달라졌습니다. 2007년 이재용 부회장의 아들이 입학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영훈초는 단숨에 ‘강남 엄마들이 가장 보내고 싶어하는 학교’가 됐습니다. 요즘은 ‘럭셔리(luxury) 사립’으로 자리잡은 계성초와 더불어 최고 인기 사립학교로 통합니다.
그렇다면 왜 이재용 부회장은 아들을 굳이 영훈초에 보냈을까요. 단순히 시설이 좋고 영어 이머전(immersion·몰입집중) 교육을 시행했기 때문일까요. 영훈국제중 사건을 취재하면서 어느 정도 그 이유를 알게 됐습니다.
영훈학원은 서울시 초대 교육감인 김영훈씨가 1975년 설립했지만 고교평준화 후 지역 특성상 영훈고-영훈중-영훈초가 명문이라고 말하기는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부터 영훈초는 교육계에서 높은 관심을 받게 됐는데, ‘열린교육’을 전파한 박성방 교장 덕분입니다. 박성방 교장은 1984년 10월 영훈초 제8대 교장으로 취임한 후 2002년까지 18년동안 교장으로 재임했습니다.
박 교장은 취임 직후 열린교육을 위해 직원연수를 실시하고 1985년부터 한 반 정원을 기존 60명에서 40명으로 대폭 줄였습니다. 열린교육(open education)이란 학생들의 다양한 개성과 창의성을 존중해 스스로 학습하고 활동하도록 하는 것으로, 수업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고 교실 간 벽도 없습니다. 일반 학교처럼 책상줄을 맞춰 앉지도 않고, 개개인의 자리를 정해주지도 않습니다.
기존 교육처럼 교사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 수업의 주체가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학생들은 각자 원하는 실험을 하기도 하고, 수업내용을 익혔으면 자기 마음대로 놀기도 합니다.
미국에서 7년간 교편을 잡다가 귀국한 박성방 교장이 시작한 이 열린교육은 사립학교협의회 등 교육계에서 선풍적인 관심을 끌며 당시 영훈을 비롯해 운현 등 사립초, 50여개 공립초에서 이 방식을 따르거나 연구했습니다. 박 교장은 ‘사교육없는 학교’, ‘시험없는 학교’, ‘체벌없는 학교’를 주장해왔고 1994년 한국열린교육협의회를 창설했습니다. 지나치게 진보적인 방식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지만, 아이들의 창의성과 개성을 길러주는 데 상당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박성방 교장은 1997년부터는 ‘영어 이머전(집중) 프로그램’을 시작했습니다. 자연과 수학 등 비영어 과목 수업을 영어로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박 교장은 미국 국정 교과서를 직접 번역해 외국인 교사 감수를 받아 사용토록 했습니다. 1995년에는 교내에 인터넷 전용망을 깔았고, 이를 이용해 전교생이 영어로 수업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현재는 모든 반에 한국인 담임과 영어 원어민 담임이 있습니다. 원어민 교사는 대부분 교사 자격증과 석사 이상의 학위를 소지한 고급인력이며 전교생이 이머전 프로그램으로 이중언어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이후 열린교육과 이머전프로그램은 같은 재단인 영훈중 일부에서도 실시됐고, 영훈국제중이 어렵지 않게 인가를 받게 된 데는 이런 요인도 작용한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현 이사장의 부인 인척들 비리 뿌리뽑아야
입소문이 퍼지면서 영훈초등학교는 지리적인 불리를 딛고 2000년대 들어 강남 아이들이 몰려오는 곳이 됐습니다. 영훈초의 셔틀버스는 대치동과 도곡동 등 학교와 수십km 떨어진 동네까지 운행중입니다.
영훈초의 인기가 정점을 찍은 것은 이재용 부회장이 아들을 보낸 2007년이었습니다. 삼성 이건희 회장의 친손주인 이재용 부회장의 자녀들이 어떤 교육을 받고 어디에 다니냐는 것은 부유층이나 자녀교육에 관심이 있는 학부모들의 지대한 관심을 끌었습니다.
‘강남엄마’들 사이에서는 11월이면 인터넷이나 SNS를 통해 올해는 재벌 또는 유명인 누가 어느 초등학교 추첨에 왔더라’라는 소문이 돌곤 합니다. 이재용 부회장은 아이를 위해 모교 경기초를 찾을 것이라는 예상이 있었지만, 결론은 영훈초였습니다. 이 부회장의 둘째는 영훈초에 응시했지만 낙첨되자 외국인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지금의 영훈초는 예전과는 조금은 다른 분위기입니다. 한때 잇달아 입학했던 유명인 자녀들은 대부분 졸업했고, 국제중 비리사건 이후 입학설명회 인기도 예전같지 않습니다.
박성방 교장이 계속 있었으면 지금같은 비리문제도 없었을 것이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영훈초를 명문으로 만든 박성방 교장은 현재 미국에 체류 중입니다. 박 교장은 얼마 전 국제중 비리로 구속된 김하주 영훈학원 이사장의 전처(前妻)입니다. 2002년 박성방 교장은 자의반 타의반 학교를 떠나 미국으로 갔고, 김 이사장과 별거를 시작했습니다.
박 교장이 영훈학원에서 물러나면서 영훈이 다소 바뀌었다고 사립학교 사정에 밝은 사람들은 말합니다. 김하주 이사장의 현재 부인 인척(姻戚)들이 학교 이권과 관련해 곳곳에 포진하고 있으며 그들의 자제가 부정편입한 사례도 있다는 것입니다.
진실은 국제중 비리사건의 수사가 끝나봐야 밝혀지겠지만 ‘결국 올 것이 왔다’는 영훈 내부의 목소리가 적지 않았습니다. 영훈 학교 관계자들과 학생, 학부모들은 일부의 비리로 교육의 질(質)까지 폄하되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공정하고 신속한 수사로 빨리 면학분위기를 되찾기를 기원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취재한 영훈국제중의 교육프로그램은 아이에게 공부를 강요하지 않고 교육비를 꽤나 아까워하는 저도 당장이라도 보내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이었습니다. 중학교 시절은 질풍노도의 시기이며 교육의 역할이 중요한 시기입니다. 그러나 국내에서 중학교 공교육에 만족하는 부모는 과연 얼마나 될까요.
국제중을 ‘귀족학교’라고 매도하고 불과 몇 년 만에 폐지를 논할 게 아니라, 비리는 철저하게 바로잡되 우리 아이들이 좀 더 질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공교육시스템을 개선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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