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교육] 영재의 기준
영재교육이 활발해지면서 영재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선천적인 것인지, 교육과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인지에 대한 의견은 여전히 분분하다. 영재성을 판단하는 기준 또한 시대가 변하면서 바뀌는 중이다.
“민족사관고 내 페이스북 중고시장인 ‘먹9사9팔9’의 판매자와 구매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구매자의 불만이 더 높았습니다. 원인은 정보 비대칭과 선후배 관계에서의 압박거래였습니다. 이에 대한 해결방안은 가격 등급제를 만들고 선후배 관계 개선과 판매자 사진 공개로 투명성을 높여 정보 비대칭을 막는 것입니다.”
지난 1일 서울대학교 멀티미디어 강의동. 올해로 네 번째를 맞은 ‘국제청소년학술대회’에 미국·중국·홍콩 등 10개국 청소년 연구자 500여명이 참가했다. 민사고 2학년인 정규식, 김재영, 양재호 군은 이날 경제 세션에서 ‘비전문적인 주체들로 구성된 사적 시장의 역할과 특징에 관한 연구-민사고 내 중고시장을 중심으로’를 주제로 발표했다.
강의실에는 다른 발표자와 일반인, 지정된 멘토 교수가 진지한 모습으로 그들의 연구 성과 발표를 경청했다. 멘토로 나선 호서대 김금수 교수(경제학과)는 발표가 끝나자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시장 거래의 전문성이 꼭 필요한가요? 그 전문성은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죠? 또 시장의 비효율로 압박거래를 지적했는데 무슨 이유로 그렇죠? 저는 선후배라는 시장 참여자의 특성과 독특한 폐쇄적 환경에 적절히 맞춰서 거래했다고 보이는데 어떤가요?”
대학원 학술발표회나 전공학회 세미나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모습이었다. 연구에 참여한 정규식군은 친구들과 지난 4개월 동안 매달린 끝에 첫 논문을 썼다. 고등학생 이상 수준의 연구를 진행하며 “큰 어려움이 없었다”고 말한 정군은 어릴 때 수학 영재교육을 받았다. 당시 커리큘럼이 재밌겠다는 생각에 서울시 북부교육청 부설 영재교육원에 들어갔다.
“타고나기보단 노력으로 되는 거 같아”
“말이 영재교육이지 그냥 수학을 가지고 놀았어요. 창의력 위주로 새롭게 이론을 만들어보는 식이었죠.” 본인을 영재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영재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사람들이 영재라고 생각하는데 타고나기보다 노력에 의해 되는 거 같아요. 다만, 영재는 남들보다 빨리 습득하고 특정분야에 대해 감각이 뛰어나 똑같이 노력해도 목표에 조금 더 일찍 도달할 수 있는 특성은 보여요.”
한국교육개발원에서 조사한 ‘2012 영재교육 통계 연보’에 따르면 2012년 현재 전국 672만1176명의 초·중등학생 중 1.76%인 11만8377명이 영재교육을 받고 있다. 이는 2003년의 1만9974명에 비해 5.9배 증가한 것이다. 이에 따라 영재교육을 하는 각종 기관도 2868개로 늘었다.
우리나라 영재교육은 2000년 영재교육진흥법이 제정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 법의 제2조 1항을 보면 영재란 ‘재능이 뛰어난 사람으로서 타고난 잠재력을 계발하기 위해 특별한 교육을 필요로 하는 자’라고 정의돼 있다. 영재교육의 영역은 일반지능, 특수 학문 적성, 창의적 사고 능력, 예술적 재능, 신체적 재능 등으로 나뉜다.
영재교육이 활발해짐에 따라 영재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영재는 타고나는 건지, 길러지는 건지 의견은 여전히 분분하다. 특히 너도나도 당신 아이가 영재라고 치켜세우며 영재로 키워준다는 사설학원이 난립한다.
영재를 선발하는 방식도 계속 바뀌어왔다. 한국교육개발원 영재교육연구센터의 이재분 소장은 “이전에는 영재를 지필식 시험으로 선발해 학업성취도검사와 유사하게 취급되면서 사교육을 조장하기도 했다”며 “2009년부터는 영재 선발에 교사관찰추천제를 도입해 전국으로 확대 시행중”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영재 선발은 교사관찰추천제에 영재성 검사와 해당 분야 적성 검사, 면접까지 다단계를 거쳐 하고 있다.
11만8천여명이 영재교육 받는다
전국 초·중등생의 1.76%다
일부선 “사교육 조장” 비판한다
교사관찰추천제 등 도입해
선발 기준 강화했다
이젠 지능만 높은 똑똑이보다
다양한 잠재력 지닌 인재 원한다
교사관찰추천제는 교사가 창의성, 학습역량, 잠재성 등을 종합적으로 관찰해 영재성이 높은 학생들을 발굴하는 방식이다. 교사 추천이 주관적일 수 있으므로 창의적 문제해결력도 따로 검증한다. 아이에게 문제를 던져주고 풀이 과정을 관찰하는 것이다.
가령, 지구온난화로 세계의 어떤 섬이 점점 사라질 것이라는 뉴스를 보여준다. 이후 아이들에게 지구온난화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 것인지, 우리나라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에 대한 대책은 뭐가 있는지 토론을 시킨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인물이 필요한지 과거 이 일을 했던 인물은 누가 있는지, 이를 토대로 문제 해결을 위해 미래에 필요한 인재상을 예측해보도록 한다.
영재교육연구센터 이경숙 박사는 “아이들의 잠재능력을 보기 위해 답이 열려 있는 문제를 주고 반응을 평가한다”며 “아이가 질문이나 말을 많이 하도록 사전에 훈련을 할 수는 있겠지만 어떤 문제에 관해 지속적인 관심도나 자기주도성을 보이는 것은 연습만으로는 힘들다”고 지적했다.
서울의 한 교육청 부설 영재교육원 교사의 설명도 비슷했다.
“‘롤러코스터를 이용해 가장 늦게 풍선 터뜨리기’ 과제가 주어졌다고 가정해 볼게요. 쫄대로 롤러코스터를 만들고 스탠드를 세워서 추로 핀을 건드려 풍선을 터뜨리는 거예요. 모둠 활동이기 때문에 팀원들과의 역할 분담 및 협력이 매우 중요하죠. 영재아들의 경우 바로 과제 수행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조건과 의견교환이 이루어지고 설계를 시작해요. 일반 학생들은 쉽게 포기하는 활동을 영재아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성공할 때까지 조건을 바꿔가며 반복실험을 해요. 주어진 재료 외에도 필통이나 책을 이용해 높낮이를 다르게 하기도 하구요. 간단한 활동만으로도 일반능력, 리더십, 창의성, 특수학업적성을 모두 평가할 수 있어요.”
서울의 또다른 교육청 부설 영재교육원 담당교사 고아무개씨도 “어떤 현장을 관찰해서 써 오라고 하면 다른 아이들이 사용하지 않는 관찰방법을 동원해 더 많은 내용을 쓰거나, 교사가 설명했을 때 어휘력이나 이해하는 능력이 뛰어난 친구들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초기에는 영재 선발이라는 말을 썼다. 하지만 사실상 뽑고 나니 진짜 영재는 몇 퍼센트밖에 안 됐다”며 “그래서 지금은 ‘영재교육대상자’라고 부른다. 단순히 영재원에 다닌다고 다 영재가 아니라 심화된 영재교육을 할 학생을 선발하는 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 반포동에 사는 6학년 서아무개군은 별다른 준비 없이 교사관찰추천제와 시험을 거쳐 교육청 부설 영재교육원 수학반에 다니고 있다. 평소 수학에 흥미는 있었지만 관련 책이나 잡지를 사보는 정도였다. 서군의 어머니는 “예전에 비해 영재교육을 하는 기관이 많아서 희소성이나 특혜라는 인식은 별로 없지만 여전히 경쟁력은 있다”며 “과거에는 학문적성검사나 준비된 아이들만 들어갈 수 있었다. 지금은 우리 애처럼 따로 준비하지 않고도 특정분야에 대한 꾸준한 관심과 가능성을 보이면 된다”고 귀띔했다.
영재학교·교육원·학급 3가지 형태로
현재 고등학교 단위의 영재학교를 제외하고 정규교육 내 영재교육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영재교육이 실시되는 기관은 영재학교, 영재교육원, 영재학급으로 나뉜다. 영재학교는 전문분야 영재를 대상으로 전일제로 운영하는 학교다. 현재 정부 주도로 지정된 영재학교는 모두 6곳이다. 영재교육원은 대학이나 시도교육청에서 설치하며 주로 방과후나 주말 또는 방학에 교육을 한다. 영재학급은 초·중·고 각 급 학교에서 운영하는 영재반을 말한다. 특별·재량활동 시간을 이용하거나 영재교육원처럼 정규수업 시간 외에 운영된다.
외국에서는 영재교육을 특수교육의 영역에서 바라본다. 학습능력이 너무 낮아서 못 따라가는 학습부진아나 반대로 너무 높아서 적응을 못 하거나 특별한 능력을 지닌 영재 모두 다른 교육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현재 우리는 영재교육에 대해 사교육을 많이 받아서, 부모가 선행을 해서 영재교육을 받는다는 편견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못하고 어려운 아이들 쪽에만 교육이 치중돼 있다. 영재들은 알아서 잘하니 굳이 지원을 안 해도 된다는 생각에 개별화교육을 받을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것이다.
안산교육지원청의 김영배 장학사는 “법에 보장된 교육 기회의 균등 차원에서도 영재교육은 필요하다”며 “뛰어난 잠재력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걸맞은 교육을 받지 못해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학생이 있다. 국가는 이런 아이들에게 교육 기회를 제공할 책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과거 영재는 단순히 지능이 높거나 혼자서 똑똑하기만 해도 인정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 측면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영재의 객관적 기준도 마찬가지다. 영재의 개념을 최초로 정의했던 미국의 심리학자 루이스 매디슨 터먼은 아이큐 135 이상의 지능을 가진 사람을 영재라고 했다. 이후 1980년대에 들어와서는 영재성의 핵심적인 요소로 창의력을 꼽고 지적 배경이나 과제 집착력 등 관련 요소들을 함께 고려했다.
1990년대부터 미국 하버드대 심리학과 하워드 가드너 교수가 제시한 다중지능이론이 주목받고 있다. 기존의 지적·학문적 분야뿐만 아니라 음악·미술 등 예술적 분야에 이르기까지 뛰어난 적성과 재능도 영재성으로 보는 것이다. 실제 2012년 현재 영재교육은 수학, 과학뿐만 아니라 발명, 외국어, 미술, 체육 등 여러 분야에서 이뤄지고 있다.
어릴 땐 잠재력을, 고교 땐 심화과정을
지역공동 영재학급에서 과학강사로 활동중인 손준호 교사(광주 서일초)는 영재의 객관적 기준으로 세 가지를 꼽았다. “가장 기본이 되는 인성 외에 먼저,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가 무엇인지 알고 오랫동안 관심을 보였느냐가 중요해요. 나머지는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는 데 다양한 과정으로 답을 이끌어내고 이를 토대로 새로운 질문들을 탐구하려는 집착력과 자신만의 방법으로 산출물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 있는지 알아봅니다.”
이재분 소장은 “시대 변화에 따라 점점 영재성을 정의하는 범위가 확장되고 있다. 한두 가지 지능만이 아닌 리더십이나 의사소통과 관련된 대인관계 능력, 심리적 능력 등의 다중지능이론과 사회적 요소를 담아 정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영재를 보는 범위와 기준이 수학·과학 분야에 치중했던 과거에 비해 지금은 언어·예술 분야 등으로 퍼져가고 있다. 대상자의 개별 수준과 요구, 흥미에 맞는 영재교육이 제도적 장치로 자리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초등단위에서는 다양한 영역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고등학교에 가면서 분야별 영재로 판별해 심화과정을 밟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게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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