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1일 화요일

2013년 미국 대학 졸업식 최고의 축사를 보며

저는 2013년 미국 피츠버그대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원 진학 준비 중입니다. 올해 미국 대학졸업식 축사 중에서 최고의 축사로 선정된 시라큐스대학교 손더스(George Saunders) 교수의 축사를 보며 떠오른 생각을 우리나라 친구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미국 대학은 졸업식에 사회 각계의 명사들을 초청하여 축사하게 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학 졸업식은 대부분 두 시간 넘게 진행되는데 학생과 학부모가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졸업을 축하하는 것도 대부분 대학에 전통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2005년 스탠퍼드대학교에서 스티브 잡스가 했던 졸업식 축사가 널리 소개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올해 최고의 졸업식 축사로는 선정된 조지 손더스 교수의 축사는 다른 축사와 달리 거창한 삶의 진리나 지침이 아니라 더 행복한 우리가 되기 위해 삶에서 실천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친절하기’를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그의 축사는 그동안 수많은 블로그와 웹사이트 등을 미국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뉴욕타임즈는 올해 7월 31일 그의 축사 전문을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손더스 교수는 그 축사에서 ‘친절하기’라는 평범한 소재를 유머러스하면서도 감동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살아오면서 후회로 남는 것은 어떤 굴욕적인 순간이나 가난했던 시간들이 아니라 중학교 1학년 때 전학을 왔던 여학생에 관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 여학생은 외모나 하는 행동으로 인해 친구들로부터 늘 무시와 놀림을 당했습니다. 자기는 다른 아이들보다는 그 아이에게 더 친절하려고 했고 때로는 변호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그때의 일이 신경쓰인다고 했습니다. 그는 살아오면서 친절하지 못했던 순간들이 가장 후회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가 보다 더 친절해지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기를 제안합니다.

우리는 왜 친절하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더 친절한 우리가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그는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이기심은 질병입니다. 성공만 생각하다보면 정작 중요한 문제들은 돌보지 못한 채 성공하는데 여러분의 인생을 통째로 써버릴 위험도 있습니다. 실수를 하더라도 기왕이면 친절해지는 쪽으로 하세요. 이기심이라는 질병 치료제를 찾아 열심히 노력하여 80년 후 여러분이 100세가 되고 제가 134세가 되어 참을 수 없을 만큼 친절하고 다정하게 되었을 때 그동안의 여러분의 삶이 어땠는지 제게 편지를 써주세요.

우리 교육에 대한 국제적인 평가는 크게 엇갈립니다. 한쪽은 미국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해 노벨 수상자에 이르기까지 한국 학생들의 높은 학업성취도, 이를 이루어내기 위한 집중력과 인내력을 부러워하는 쪽입니다. 다른 한 쪽은 최근 프랑스 르몽드지가 '교육 강박증에 걸린 한국인'이란 제목의 기사를 내 보낸 것처럼 한국 학생들의 낮은 학습 흥미도와 높은 자살률 등 부정적인 면을 부각시키는 쪽입니다. 한국 학생들이 좋아하지 않더라도 해야 할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은 다른 나라 사람들이 충분히 부러워할만합니다. 다만 그 힘든 과정에서도 서로에게 친절하기 등의 삶의 기본을 잊지 않고 실천함으로써 서로의 고통을 이해하며 서로에게 더욱 친절할 수 있는 한국 학생이 되도록 교육시킨다면 세계인들은 한국 교육을 더욱 높이 살 것입니다.

한국교육이 추구하는 것이 ‘행복교육’이라고 들었습니다. 손더스 교수가 말하는 것처럼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을 이겨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들어 있는 덜 친절해지려는 이기심이 질병임을 깨닫고 치료제를 찾아 열심히 노력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나라도 경제적으로는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렀으므로 가장 평범한 덕목인 ‘친절하기’를 통해 함께 행복해지는 세상을 만들어가기를 바래봅니다. 그의 졸업식축사 전문 번역본을 첨부합니다. 원문은 구어체로 되어 있어서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일부 수정했습니다.

◇2013년 미국 대학 졸업식 최고의 축사: 조지 손더스(George Saunders) 교수의 축사
*원문출처: http://www.syracuse.com/entertainment/index.ssf/2013/08/george_saunders_commencement_speech.html

시간이 흐르면서 축사에 전형적인 양식이 생겨났습니다. 그것은 바로 삶의 과정 중 끔찍한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고 과거 한때 잘나가던 어떤 늙은이(바로 저)가, 찬란한 미래가 펼쳐진 탁월한 젊은이들(바로 여러분들)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주는 것입니다. 저도 그 전통을 존중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돈 빌리는 것, 옛날에 유행했던 복고춤 추는 것을 보며 재밌어 하는 것 말고 노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유용한 일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인생을 되돌아 봤을 때 여러분이 후회하는 것은 무엇인가요?”라고 물어보는 것일 겁니다. 그러면 그들은 기꺼이 이야기해줄 거예요. 여러분이 물어보지 않아도, 때로는 말해주지 않아도 된다고 해도 굳이 이야기해 줄 겁니다.

그렇다면 저는 무엇을 후회할까요? 가난하고 힘들었던 시절? 도살장에서 살 발라내는 끔찍한 직업을 가졌던 것? (이 일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인지 질문조차 하지 마세요.) 저는 그런 것을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수마트라의 한 강에서 약간 취하여 입을 벌린 채 알몸으로 수영하다가 수면 위를 올려다봤을 때 300여 마리의 원숭이들이 파이프라인 위에 앉아 누던 대변이 강 아래로 떠내려가는 걸 보았을 때? 그리고 그 후 죽을 만큼 아파서 일곱 달 동안 앓아누워 있던 것?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면 굴욕적인 순간들을 후회할까요? 예를 들어 제가 좋아하던 여성이 지켜보는 앞에서 하키 경기를 하다가 실수로 이상한 소리를 지르며 넘어지면서 자살골을 넣고, 그 와중에 제 하키스틱을 관중석으로 날려 보내서 그 여성을 거의 칠 뻔 했던 것이요? 아뇨. 저는 그것 또한 후회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기 제가 후회하는 것이 있습니다.

7학년 때 저희 반엔 새로운 전학생이 왔습니다. 비밀보장을 위해 이 연설에서는 그녀의 이름을 '엘렌'이라고 하겠습니다. 엘렌은 매우 작고 부끄러움이 많은 아이였습니다. 그녀는 당시에는 할머니들만 쓰던 파란색의 캐츠아이 안경을 썼습니다. 거의 항상 불안해하던 그녀는 불안할 때 마다 자신의 머리카락 몇 가닥을 입에 넣고 씹던 버릇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녀가 우리 학교와 우리 동네에 왔을 땐 늘 무시당하고 놀림도 당했습니다 (“네 머리카락 맛있어?”와 같은 놀림이요). 이러한 것들이 그녀에게 상처를 준다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이러한 모욕을 당한 후의 그녀의 모습을 기억 합니다: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리고, 약간은 충격을 받은 모습으로, 그녀는 그곳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최선을 다했어요. 그녀는 머리카락을 입에 문채로 줄행랑을 쳤지요. 제 생각엔 방과 후 집에 돌아온 그녀에게 그녀의 어머니가 이렇게 물어 볼 것 같아요: “딸, 오늘 하루는 어땠니?” 그러면 그녀는 이렇게 대답하겠죠, “오, 좋았어요.” 그러면 그녀의 어머니는 “친구들은 많이 사귀었니?” 라고 물으시고 그녀는 “그럼요, 많이요.” 라고 대답하겠죠.

이따금 나는 그녀가 그녀의 앞마당 주위를 혼자서 어슬렁거리는 걸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후 – 그녀의 가족은 이사를 갔습니다. 그것이 끝이었습니다. 아무런 비극도, 결정적인 심각한 괴롭힘도 없었습니다. 어느 날 그녀는 그 곳에 있었고, 그 다음날 그녀는 그 곳에 없었습니다. 이것이 이야기의 끝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것을 왜 후회 할까요? 왜 42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그 일들을 계속 생각하고 있을까요? 사실 저는 대부분의 다른 아이들에 비해 그녀에게 친절했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불친절한 말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사실은 때때로 그녀를 조금 변호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저는 그때의 일이 신경 쓰입니다.

그래서 비록 진부하기도 하고 또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지만, 제가 아는 사실 하나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제가 인생에서 가장 후회하는 것은 바로 친절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제 앞에서 고통 받고 있는 그 순간에 저는 제가 편한 방식으로 내성적으로 대응했어요.

살아오면서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으로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나요? 그렇다면 그들은 분명 여러분에게 친절했던 사람들일 겁니다. 저는 여러분이 보다 더 친절해지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기를 제안합니다. 조금 쉬워 보이면서도 막상 실천에 옮기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이제 백만 달러 질문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왜 더 친절하지 않을까요? 뭐가 문제일까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는 아마 다윈설이 이야기하듯이 일련의 혼동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이것은 (1)우리는 세계의 중심이다(즉, 우리 개인의 이야기가 가장 중요하고 흥미로운 단 하나의 이야기라는 것), (2)우리는 세계로부터 분리되어 있다(여기 미국이 있고 밖엔 온갖 잡동사니 들이 있다 – 개, 스윙 세트, 또 네브라스카 주와 낮게 깔린 구름 및 다른 사람들), 그리고 (3)우리는 영원하다(죽음은 현실이다, 그래 – 나 말고 당신에게만) 등 입니다.

우리는 이 혼동을 실제로 믿진 않습니다. 배운 사람들이기에 그 정도로 어리석진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들을 본능적으로 믿고 있고 그에 대한 믿음에 따라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실 우리들은 마음속으로는 덜 이기적이고, 현재 일어나고 있는 것들에 대해 더 잘 인식하고, 더 마음을 열고, 더 다정해지고 싶어 하지만, 이 혼동들로 인해 늘 이기적이 되고 맙니다.

두 번째 백만 달러 문제입니다. 어떻게하면 우리가 더 다정해지고, 더 열린 마음으로, 덜 이기적이고, 더 주고, 덜 착각하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아주 좋은 질문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제게 삼분 밖에 남지 않았네요.

그러니 그냥 제가 이야기하겠습니다. 방법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이미 알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살아가면서 자신이 친절했던 시기와 그렇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는 것, 그리고 여러분을 친절 쪽으로 이끈 것과 불친절함에서 멀어지게 한 것이 무엇이었는지도 알고 있습니다. 교육, 좋습니다. 예술 작품에 자신을 몰입하는 것, 기도하는 것, 명상하는 것, 친한 친구와 마음 터놓고 이야기나누는 것, 영적인 전통에 따라 우리 자신을 확고히 하는 것 모두 도움이 됩니다. 우리 이전의 많은 현자들이 이와 똑같은 질문을 했고 우리를 위해 답도 남기고 갔습니다. 친절함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 이것은 무지개와 강아지부터 시작하여 모든 것에 다 적용될 만큼 범위가 넓습니다.

좋은 소식이 하나 있어요. “친절해 지는 것” 은 나이가 들면 일부 저절로 생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것은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것 같아요. 나이가 들면서 우리는 이기심이 얼마나 부질없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사실, 이기적인 것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 말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게 되고 그렇게 됨으로써 자기중심성과 반대되는 것을 배웁니다. 우리는 현실에 치이고, 사람들이 내 편에서 방어해주고 도와줄 때, 우리들은 서로가 무관한 존재가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이 약해지는 것을 보며 아마 우리 또한 (언젠가, 먼 훗날에) 점차 약해질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서 점차 이기적인 부분이 줄어들고 더 다정해 집니다. 저는 이것이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위대한 시러큐스의 시인, 헤이덴 카루스(Hayden Carruth)는 자신의 삶의 끝이 가까워졌을 때 쓴 시에서 자신은 “이제 거의 사랑이다”라고 했습니다.

저의 진심이 담긴 여러분을 위한 소원은 여러분이 나이가 들면서 자기는 감소하고 사랑 안에서 성장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점차적으로 사랑으로 대체될 것입니다. 만약 자식이 있다면, 이것은 자기감소 과정에 있어서 커다란 순간이 될 것 입니다. 자식들에게 도움만 된다면 여러분에게 일어나는 것은 더 이상 상관하지 않게 될 것 입니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의 부모님이 오늘 너무나도 자랑스럽고 행복한 이유입니다. 부모님이 가장 원하던 꿈 중 하나가 이루어졌습니다. 여러분은 어려운 무언가를 성취하였는데 그것이 여러분을 의미있는 인간으로 확장시켜 주었고 더 나은 인생을 만들어 줄 것입니다. 지금으로 부터 앞으로도 영원히 말이죠.

그건 그렇고, 졸업을 축하합니다.

젊을 때 우리들은 과연 우리가 해낼 수 있을지에 대해 늘 불안해합니다. 우리는 성공할 수 있을까? 우리를 위한 실현 가능한 삶을 구축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여러분은 – 특히 지금 세대의 여러분은 - 아마 야망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단계를 알아차렸을 것입니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고등학교 때 열심히 하고,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대학 때 잘하고, 좋은 직장에서도 다른 무언가를 위해 또 열심히 하고...

사실 이것도 괜찮습니다. 만약 우리가 친절해 지려면 그 과정에서 우리 자신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 행동가로, 성취하는 사람으로, 꿈꾸는 사람으로. 최고의 자신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그래야만 합니다.

하지만 성취한 것에 기대기는 어렵습니다. “성공하는 것,” 이것이 여러분에게 무엇을 의미하든지, 이는 매우 어렵고 끊임없이 새로워져야하며(성공은 마치 산과 같아서 높이 올라 갈수록 자신 앞에서 점점 더 자라납니다), 정작 중요한 문제들은 돌보지 못한 채 성공하는 것에 여러분의 인생을 통째로 써버릴 위험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조언을 하나 해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의 삶은 서서히 더 친절해지고 다정해지는 과정이니 조금 서두르세요. 그 과정에 속도를 내보세요. 지금 당장 시작하세요. 우리 안에는 혼동이 하나 자라고 있습니다. 질병인데, 실제로 이기심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치료법 또한 있습니다. 그러니 자신을 위해 좋은, 능동적인, 그리고 다소 필사적인 환자가 되기 바랍니다. – 여러분의 남은 생애 동안 가장 효과적인 반이기주의 약을 열심히 찾으세요.

다른 야심찬 것들도 해보기 바랍니다. – 여행 다니기, 부자 되기, 유명해지기, 혁신 일으키기, 리드하기, 사랑에 빠지기, 재산을 쌓고 잃기, 야생 밀림의 강에서 알몸으로 수영하기(원숭이 대변이 있는지 먼저 시험을 거친 후에). - 하지만 여러분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는 과정에서 실수를 하더라도 기왕이면 친절해지는 쪽으로 하기를 바랍니다. 자신을 좋지 못한 사람으로 만들거나 하찮게 만드는 것들은 피하고, 여러분을 큰 질문 쪽으로 이끄는 것들을 하세요. 여러분 안에서 빛나고 있는 인격 이상의 그 부분은 – 말하자면 여러분의 영혼은 - 이제까지 존재한 모든 것 만큼 밝게 빛납니다. 셰익스피어만큼 밝게, 간디만큼 밝게, 마더 테레사만큼 밝게 말입니다. 이 불가사의하게 빛나는 부분으로부터 여러분을 분리시키는 모든 것은 끊어버리기 바랍니다. 이것이 존재한다고 믿고, 더 알기 위해 노력하고, 기르고, 그 열매를 끊임없이 함께 나누세요.

그리고 훗날, 80년 후에, 여러분이 100세 일 때 그리고 제가 134세 일 때, 우리 둘 다 참을 수 없을 만큼 너무나 친절하고 다정할 때, 그때 저에게 그동안의 여러분의 삶이 어땠는지 편지를 써주세요. 여러분이 저에게 그동안의 삶이 아주 멋졌다고 하길 바랍니다.

2013년 졸업생 여러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커다란 행복, 세상의 모든 행운, 그리고 아름다운 여름이 여러분 모두와 함께 하길 기원합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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